송지호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두 여인의 도움으로 송지호 철새관망타워로 돌아오니 긴장이 탁 풀리면서 온몸의 힘이 빠졌다. 양양 서울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지 얼마 안됐지만 배도 고프고 목도 말랐다.
고성 〈백촌막국수〉는 당초 여행계획을 짤 때에 탐방 여부를 정하지 못한 곳이었지만, 송지호 철새관망타워에서 10분 거리인데다가 속초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었으므로, 잠시 들러서 주린 배와 마른 목을 다스린 후 속초의 다음 목적지로 향하기로 했다.
전국에 막국수 명가(名家)가 얼마나 많은가. 맛의 평준화가 진즉 이루어진, 진입장벽이 낮은 음식 분야가 막국수다. 바꿔 말하자면, 고속도로 휴게소 들르는 기분이었다.
식당은 백촌리 안쪽에 있다. 식당까지의 오르막길은 폭이 좁아 급한 마음에 속도를 내어 올라갔다. 식당 옆에는 승용차 십여 대의 주차공간이 있다. 도착한 시각은 오후 네 시, 점심 때도 아니고 저녁 때도 아니므로 식당이 한산할 타이밍인데 공터에 차량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운이 좋았는지 차량 두 대에 나눠 타고 온 가족이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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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외관은 평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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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는 손님이 가득했다. 오후 네 시가 넘은 시간에 손님이 이렇게 많은 식당은 처음 보았다. 사리를 추가할 수 없으므로 만일을 대비해서 메밀국수 곱빼기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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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타 막국수집보다 두세 배 『늦게』 나왔다. 상이 차려질 때에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막국수 중에 가장 아래로 생각하는 동치미 막국수였다. 면과 동치미가 따로 노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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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을 담은 그릇과 동치미를 담은 그릇이 따로 나왔다. 자세히 들여다보았지만 메밀 면에 깨·계란·김가루를 올린 모습이 여타 막국수와 다를 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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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에 동치미 국물을 부었다. 양념장은 일체 올리지 않고 막국수를 한 젓가락 맛보았다.
『신세계』가 열렸다. 동치미 국물은 약간 밍밍한 듯하면서도 달짝지근하기도 하고 짭짤하기도 했는데 끝맛이 무척 개운했다. 동치미에 과일을 갈아넣었다고 추측할 뿐 과일이 들어갔다면 사과인지 배인지 아니면 다른 과일인지 가늠할 수 없었고 과일 외에 다른 뭔가가 들어간 건지 종잡을 수 없었다.
막국수 면은 여타 막국수집과 비교해 볼 때 맛과 식감이 완전히 달랐다. 꺼끌꺼끌한 메밀 면이 입속을 기분좋게 훑고 지나가면 감미로운 동치미 국물이 뒤이어 맛있게 파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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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도 산뜻하고 정갈했다. 특히 아삭한 열무가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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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치미 국물만 부어 먹으면 그 자체로 완벽한데 식탁 한구석에 일반 막국수집에서 쓰는 양념장이 놓여있는 게 의아했다. 계산대에서 사장님에게 물었더니, 동치미만 부어먹는 것이 여기 막국수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인데, 비빔 막국수에 익숙한 손님들이 양념장을 많이 찾아 어쩔 수 없이 놓아 두었다는 설명이었다.
들어갈 때에 허름해 보이던 식당이 갑자기 빛나 보였다. 고개를 들어 잠시 우러러보았다. 메밀과 동치미의 잔향이 아직까지도 입 안에 남아 있었다. 감히 우리나라 『최고』의 막국수집이라고 칭하겠다. 100% 다시 찾아와야 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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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백촌리 162
전화: 033-632-5422
■ 여행시기: 2016년 10월 3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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