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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맛집

김제시(2022.11): 김제 "첫" 여행객이 추천하는 김제 당일여행코스

by AOC 2022.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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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 벽골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이 보이는 만경 평야로 유명한 전라북도 김제.

 

김제에 처음으로 발을 디뎌본 외지인 여행객으로서 김제의 관광명소를 아우르는 당일여행코스를, 김제 여행을 앞둔 여행객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1. 금산사

주소: 전북 김제시 금산면 모악15 1

 

외지인의 입장에서 김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두 곳은 아마도 금산사벽골제일 것이다.

 

후삼국 시대, 전라도와 충청도 일대를 아우르며 맹위를 떨쳤던, 후백제의 왕 견훤.

 

노년에 이르러 그는 큰아들 신검神劍에 의해 넷째 아들 금강을 잃고 금산사에 유폐되었다.

 

역사책과 KBS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보았던 역사적 현장이 김제 당일여행의 첫 여행지였다.

 

 

 

 

주차에는 두 가지 옵션이 있다.

 

① 모악산 관광안내소와 매표소 부근에는 광활한 무료 주차장이 있다. 이곳에 주차 후 식당 밀집 지역을 거쳐 금산사까지 걸어가면 된다.

 

거리는 대략 1.5KM, 소요 시간은 도보로 22분이다. 사진에서 보듯이 가을이면 산책로에 빼곡히 들어찬 단풍나무를 감상하는 묘미가 있다.

 

주차장에서 금산사까지 왕복할 경우, 거리는 약 3KM이며 40분 이상을 걸어야 한다. 더하여, 금산사 경내를 돌아볼 시간과 거리도 고려해야 한다.

 

② 금산사에 가려면 사찰 매표소에서 입장료 3천원을 내야 한다.

 

차를 가지고 금산사 경내까지 가고자 한다면 사찰 매표소에서 주차비 3천원을 추가 지불하면 된다.

 

산책로를 눈으로만 감상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①에 비해 금산사까지 빠르고 편하게 다다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금강문과 천왕문 일대에 주차할 수 있다.

 

방문한 날이 평일이라 한적할 거로 생각했는데, 완전 오산이었다.😲

 

대형 관광버스도 여러 대 있었고, 이미 주차된 승용차들로 인해 주차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천왕문 너머로 보이는 것은 보제루普濟樓이다.

 

여느 사찰과 마찬가지로 동방 지국천왕, 서방 광목천왕, 남방 증장천왕, 북방 다문천왕이 천왕문 내부에 우뚝 서 있다. (좌측 상단에서 시계 방향)

 

 

 

 

천왕문을 통과하여 보제루로 가는 길

 

길 좌측에는 금산사 성보박물관이 있고, 길 우측에는 산사 시화전 당선작들이 전시되어 있다.

 

 

 

 

보제루普濟樓

 

중생을 극락세계로 널리 이끌어 주는 누각이라는 뜻이다.

 

일주문·천왕문·불이문 등의 문을 통과한 후 보제루를 지남으로써 사찰의 중심 영역에 들어가게 된다.

 

 

 

 

사찰의 중심 영역에 가려는 자는 보제루의 밑을 지나가거나 옆을 돌아가야 한다.

 

보제루의 밑을 지나야 하는 경우, 아래층은 통로가 되고 위층은 대중집회 또는 불교의식용 도구 보관 장소가 된다.

 

 

 

 

보제루 아래를 통과하여 계단을 오르면 눈 앞에 펼쳐지는 사찰 풍경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지금까지 다녀본 사찰 중 범종각·대장전·지장전·대적광전·미륵전이 이처럼 시원시원하게 배치된 곳은 없었다.

 

 

 

 

범종각梵鍾閣

 

범종각은 범종梵鍾·법고法鼓·운판雲版·목어木魚의 네 범음구를 봉안한 전각이다.

 

의식·예불·공양 시간을 알릴 때 각각의 기물을 사용한다.

 

장엄하게 울리는 범종 소리는 지옥·아귀·축생·아수라·사람 등 중생 일체를 제도한다.

 

 

 

 

대장전大藏殿 (보물 827호)

 

대장경을 보관하려고 만든 목탑이다. 정유재란 때 전소되었으나 인조 대에 미륵전 앞에 다시 세워졌고 1922년에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석가모니불 뒤에는 정교하고 화려한 광배가 조성되어 있다.

 

 

 

 

김제 금산사 석등 (보물 828호)

 

원래 미륵전 앞에 놓여 있었다. 1922년 대장전大藏殿을 이전할 때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조각이나 지붕돌에 새겨진 꽃 조각 양식으로 미뤄 고려 전기 양식으로 추정된다.

 

 

 

 

김제 금산사 노주露柱 (보물 22호)

 

용도는 명확하지 않다. 미륵전 앞에서 미륵부처를 광명으로 공양했던 광명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돌로 조성된 좌대 위에 보주寶珠 형태의 돌기둥이 놓여 있어서 노주라는 명칭이 붙었다.

 

 

 

 

명부전冥府殿

 

지장보살을 모시는 전각으로 시왕十王·판관判官 등을 봉안한 곳이다.

 

지장보살은 스스로 지옥에 들어가 「지옥이 텅 빌 때까지 육도의 중생을 다 제도한 후 성불을 이루리라」 하고 맹세한 부처이다. 절로 숙연해지는 맹세이다.🙏

 

 

 

 

대적광전大寂光殿

 

대적광전은 중앙에 비로자나불 좌우에 노사나불·석가모니불을 모신 전각이다.

 

이는 화엄경의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를 상징하는데, 연화장세계를 대정적大靜寂 세계라고도 하여, 여기서 대적광전의 이름이 유래하였다.

 

1968년에 보물 476호로 지정되었으나, 1986년 화재로 전소되어 보물 지정이 해제되었다. 😭

 

대적광전 내부에서 서너 명의 신도가 기도 중이었다 너무나도 간절한 표정과 몸가짐을 보니 나 역시 숙연해지는 느낌이었다.

 

 

 

 

대적광전과 명부전 앞에 홀로 서 있는 배롱나무. 수형樹形이 자못 볼 만하여 여름철 만개했을 때의 광경이 문득 궁금해졌다.

 

 

 

 

육각 다층석탑

 

통일신라 시대 일반적 모양에서 장식이 화려한 고려 시대 양식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세워졌다.

 

본래 봉천원 터에 있었으나, 정유재란 이후 수문 대사가 전각을 복원하면서 현재 위치로 이전되었다.

 

 

 

 

석련대石蓮臺

 

불상을 올려놓는 연꽃 모양의 받침대이다. 통일신라와 고려 초기 사이에 제작된 좌대로 추정된다.

 

규모나 조형미로 미루어 볼 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미륵전彌勒殿

 

국보 62호. 금산사의 랜드마크.

 

진표율사가 통일신라 경덕왕 23년부터 혜공왕 2년까지 연못을 참숯으로 메우고 거대한 철조미륵불을 조성하여 미륵전 금당에 봉안하였다.

 

미륵전의 1층에는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에는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에는 미륵전彌勒殿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다. 문구는 다르지만 셋 모두 미륵 세계를 가리킨다.

 

미륵전 내부에는 높이 11.8m에 달하는 미륵장육존 불상이 모셔져 있다.

 

후백제 견훤이 그의 아들 신검에 의해 금산사에 유폐되어 지냈던 곳이 바로 이 미륵전이다.

 

미륵불의 발아래에 누운 채 견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칼날에 스러져 간 넷째 아들에 대한 그리움, 첫째 아들에 대한 배신감……. 견훤은 한 마리의 늙은 사자가 되어 울부짖지 않았을까. 😤

 

사진으로는 미륵전의 웅장함과 화려함을 전달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참고로, KBS 드라마 태조 왕건 방영분 중 견훤의 금산사 유폐 및 탈출 장면을 금산사에서 실제로 촬영했다고 한다.

 

견훤은 자신의 기구한 이야기가 천여 년 뒤 금산사에서 드라마로 재현될 거라고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미륵전 옆 계단을 오르면 적멸보궁寂滅寶宮이다.

 

적멸보궁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에 직접 예불을 드리기 위해 지은 전각이다. 부처님의 분신과 다름없는 사리를 모시기 때문에 전각 안에 불상·불화를 모시지 않으며, 전殿·각閣보다 더 높은 의미의 궁宮이라고 한다.

 

적멸보궁에서 내려다본 금산사 경내가 시원시원하다. 아들 금강을 잃고 유폐되어 경내를 걸어 다녔을 견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오층 석탑

 

고려 경종 4년부터 성종 원년에 걸쳐 세워졌다.

 

본래는 9층이었으나 현재는 5층 석탑으로 남아있다.

 

5층 석탑에서 내려다 본 미륵전은 아래에서 볼 때보다 더 웅장하고 장엄했다.

 

 

 

 

나한전羅漢殿·삼성각三聖閣·조사전祖師殿

 

나한전은 깨달음을 얻은 불교 수행자인 아라한阿羅漢을 모신 전각으로 응진전이라고 한다.

 

아라한은 수행의 최고 경지인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이루어 부처님의 말씀을 계승하는 역할을 한다.

 

삼성각은 산신山神·독성獨聖·칠성七星을 모신 건물이다.

 

조사전은 역대 조사, 그 종파의 조사스님, 사찰의 창건주, 역대 주지스님 등 해당 사찰에서 후세에 존경받는 스님들의 영정이나 위패를 모신 전각이다.

 

 

 

 

계단을 다시 걸어 내려와서 금산사 경내를 다시 돌아보았다.

 

아까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나니 전각 주위의 풍경이 비로소 보였다.

 

대장전大藏殿 앞에 범상치 않은 고목古木. 죽은 나무인 듯한데 방치한 걸 보면 특별한 사연이 있나 싶었다.

 

 

 

 

이게 웬걸. 버젓이 살아 있는 벚나무였다. 이 벚나무가 피운 벚꽃을 보기 위해서라도 내년 봄에 다시 와야 할 듯.

 

 

 

 

이곳까지 자동차로 올 경우, 금강문 옆 단풍 숲길을 놓치기 쉽다. 운치가 그득한 길이니 절대로 지나치지 말 것!

 

 

1. 김제의 보물 창고
2. 견훤의 회한이 맺힌 곳
3. 미륵전의 웅장함과 화려함은 압권

 

 

 

 

 


2. 금산교회

주소: 전북 김제시 금산면 모악로 407

 

금산교회는 금산사에서 약 1㎞ 거리다. 금산사에 왔다면 꼭 들러볼 만한 유서 깊은 곳이다.

 

 

 

 

금산교회 길 건너편에는 제법 넓은 주차장이 있다. 주차 고민 No! 👋

 

주차장 한편에는 금산교회 전시관이 있다. 내부공사 중인 듯하여 들어가진 않았다.

 

 

 

 

길 건너편에서 바라본 금산교회

 

아담한 규모이지만,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오래 전 지어진 교회치고는 새것이라 이상했다. 이 건물은 1988년에 신축한 것이라고 한다.

 

 

 

 

신축 교회 옆 한옥이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제2호 겸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36호인 금산교회이다.

 

1908년 전주 선교부 소속 테이트(Lews B. Tate) 선교사가 지었다.

 

내부는 통 칸으로 이루어졌으며, 남북방향 5칸과 동쪽방향 2칸이 만나는 곳에 강단을 설치하여 남쪽에는 남자가 동쪽에는 여자가 앉도록 하였다.

 

이는 한국 교회 초기건축에서 나타나는 형태이다.

 

한국 전통사회의 남녀 구분이라는 큰 문제를 남녀가 나뉘어 예배를 보도록 ㄱ자형 건물을 지음으로써 해결했던 것이다.

 

한국의 전통 건축양식과 서양식교회의 특징을 조화롭게 결합한 이 교회는 초기 교회 건축의 한국적 토착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건물인 셈이다.

 

 

 

 

금산교회 신축건물 뒤에는 오래되어 보이는 우물이 있다.

 

금산교회는 조덕삼 장로와 이자익 목사의 일화로 유명하다.

 

일제 시대, 모악산의 금광으로 전국에서 금을 캐러 온 광부들로 이곳 일대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평양에서 온 조덕삼과 남해에서 온 이자익은 테이트 선교사의 복음을 접하였는데, 이자익은 조덕삼의 집 마방馬房에서 일하는 머슴이었다.

 

복음에 감화된 조덕삼의 사랑방에서 1905년 금산교회가 설립되었다.

 

이후 장로 선출 선거에서 주인 조덕삼과 머슴 이자익이 맞붙게 되었다. 머슴이었던 이자익이 주인 조덕삼을 누르고 장로로 선출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조덕삼은 투표 결과에 흔연히 승복했다. 조덕삼은, 이자익의 신심이 자신보다 더 깊으니 그가 교회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며 물심양면으로 교회의 일을 도왔다.

 

조덕삼은, 이후 이자익을 금산교회의 목사가 되도록 이끌고 자신은 장로가 되어 교회 발전에 힘썼다고 한다.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도 될 만한 스토리인 듯. 📺

 

 

 

 

고풍미가 넘치는 목조 종탑

 

금산교회에서 가장 눈에 띄는 구조물이다.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제 몸에 새겨 넣은 고고한 자태에 카메라 셔터를 멈출 수 없었다.

 

 

1. 불교에 금산사가 있다면, 기독교에는 금산교회가 있다
2. 주인과 머슴의 깊은 신심
3. 운치가 있는 목조 종탑

 

 

 

 

 


3. 수류 성당

주소: 전북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

 

끔찍한 학살이 벌어졌던 곳이지만, 지금은 평온한 산골마을의 성당일 뿐이다.

 

이처럼 극심한 역사적 대비로 인해 수류 성당은 이곳을 찾는 이의 마음을 뒤흔든다.

 

 

 

 

수십 년 전 잔인한 학살극이 벌어졌던 곳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두 팔을 벌린 예수상과 마리아상 뒤로 고풍스러운 수류 성당이 보인다.

 

 

 

 

김제 수류 성당은 1889년 전주 전동 성당과 함께 전라도에서 최초로 설립된 성당이다.

 

수류 성당은 1889년 베르모렐Vermorel 신부가 배제에 건립한 배재 성당이 모태이다. 베르모렐 신부는 배제 성당 건립 후 수류에 공소를 세웠다.

 

1895년 배제 성당에 부임한 라크루Lacrouts 신부는 새로운 본당 자리로 수류를 낙점하고 그해 10월에 본당을 배제에서 수류로 옮겼다. 미사 참례에 목말랐던 교인들이 수류 성당 인근에 교우촌을 형성하였다.

 

 

 

 

1950년 9월 24일, 주일미사에 참례하러 온 신자들을 죽이려고 북한 인민군은 정문을 걸어 잠근 후 성당에 불을 질렀다.

 

신자들은 불길을 피해 성당 밖으로 빠져나왔으나 인민군은 그들을 붙잡아 기어코 총으로 쏴 죽이고 칼로 찔러 죽였다. 그 수가 50여 명에 이르렀다.

 

그 당시 수류에 피난 왔던 당시 전주교구장 김현배 주교와 신부 8명, 수녀 14명도 인민군에게 사로잡혀 모진 고초를 겪었다.

 

휴전 후 수류 성당 신자들은 냇가에서 채취해 온 모래와 자갈로 벽돌을 만들어 성당을 지어 올렸다.

 

불타 없어진 성당이 있던 자리에 신앙으로 새로운 성당을 세운 것이다.

 

 

 

 

수류 성당 사무실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월·수·금 새벽 6시, 화·목·토 저녁 7시에 미사가 집전된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사제관. 소박하면서도 아담하다.

 

 

 

 

성당과 사제관 사이에는 넓은 잔디밭. 돌로 만든 작은 동산에는 성모상이 모셔져 있다.

 

 

 

 

단풍나무 아래 목제 데크의 테이블은 운치가 그만이다. 목재 데크 옆에는 벤치와 미니어처 같은 종탑이 있다.

 

녹이 잔뜩 슨 종탑의 종은 수류 성당이 겪었던 아픈 과거를 슬며시 드러내는 것 같다.

 

 

1. 불교에 금산사, 기독교에 금산교회가 있다면 천주교에는 수류 성당이 있다
2. 신앙 때문에 비참하게 죽어간 50명의 신자들
3. 슬픈 과거 때문에 더 슬프게 느껴지는 수류 성당의 평온함

 

 

 

 

 


4. 풍차

주소: 전북 김제시 하동1길 175

 

여행에 있어서 먹는 것의 즐거움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각 지역에는 수많은 맛집이 있다.

 

지역의 진정한 맛집은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식당일 경우가 많다.

 

 

 

 

풍차의 랜드마크는 무궁화호 객실 열차를 개조한 식당이다.

 

주차장에서 바라보면 마치 열차가 역사驛舍 내부로 진입하는 듯한 모습이다.

 

 

 

 

열차 옆에는 선로 표지판까지 세워 놓아서 정감이 넘친다.

 

김제와 목포를 오가는 무궁화호였을까? 김제에서 목포로 향한다는 안내판이 부착되어 있다.

 

기차 외부에는 다양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그림 모두가 펜화 느낌이 강하게 풍겨서 신선하다.

 

 

 

 

영업은 11시에 시작하여 22시에 종료한다.

 

브레이크 타임은 15시부터 17시까지다.

 

※ 11:30부터 21:00까지 식사 주문 가능. 21:00는 이해하겠는데 11:30은 무슨 뜻일까……. 11시에 입장해도 11:30이 되어야 주문 가능하다는 건가?

 

 

 

 

식당으로 개조된 객실 내부는 걱정했던 것만큼 답답하진 않다.

 

테이블과 의자도 식사에 1도 불편함이 없다.

 

이날 앉았던 곳은 인삼밭 뷰…….

 

 

 

 

메뉴판

 

기존 방문고객들이 인터넷에 남긴 후기에서 예습(?)해 둔 메뉴가 있었지만 종업원에게 메뉴 추천을 부탁했다.

 

종업원은 이탈리안 돈가스와 낙지 정식을 권했다. 예습해 둔 메뉴와 종업원 추천 메뉴 일치! 👍

 

파스타도 먹고 싶었지만 욕심인 것 같아 마음을 내리눌렀다.

 

 

 

 

식전 수프. 예전 경양식집에서 먹던 추억의 맛이었다.

 

후추가 적절히 가미된 옥수수 수프. 맛이 없으려야 없을 수 없었다. 순식간에 클리어.

 

 

 

 

식전에 나오는 빵은 수프에 찍어 먹어도 맛있다고 한다. 하지만 수프는 이미 깨끗이 먹어 치웠는데?

 

이탈리안 돈가스는 치즈가 굳을 수 있으므로 조금씩 잘라 먹으라는 충고는 기억 완료.

 

식전 빵은 마늘빵인데 부드러워서 먹기 좋았다.

 

 

 

 

이것이 바로 낙지 정식이다.

 

낙지볶음에 밥 두 덩어리와 소면 한 덩어리가 메인 구성이다.

 

낙지볶음 양념은 별것 없어 보이는 비주얼과 맛인데, 수저를 잠시도 놀릴 수 없는 마성을 지녔다.

 

샐러드 사이에 숨어 있는 삶은 팥은 또 다른 별미다.

 

 

 

 

이탈리안 돈가스

 

연육을 제대로 했는지 두툼한데도 부드러워서 안심으로 만든 것 같았다. 등심일 가능성이 높겠지만.

 

양도 꽤 많아서 다 먹고 나니 제대로 된 포만감이 밀려왔다.

 

치즈가 굳을 수 있으므로 조금씩 잘라 먹으라는 충고는 정확했다.

 

돈가스 튀김 안에 치즈가 얼마나 많이 들었던지 약간의 칼질에도 치즈가 줄줄 흘러나왔다.

 

 

 

 

계산대 옆의 셀프바

 

이곳 후기를 보면 식후에 과일과 아이스크림이 나왔다던데 코로나 사태 이전의 일이라고 한다. 지금은 셀프바에서 음료나 커피를 고르면 된다.

 

 

1. 이탈리안 돈가스: 맛있다
2. 낙지 정식: 맛있다
3. 김제에 다시 온다면? 풍차에 다시 갈 것이다!

 

 

 

 

 


5. 벽골제

주소: 전북 김제시 부량면 벽골제로 442

 

금산사와 함께 김제의 2대 랜드마크인 벽골제.

 

학창 시절 국사책에서 자주 보았던 역사적 현장을 마주한다는 설레임?

 

 

 

 

벽골제관광안내소에서 유료 입장권을 구매해야 한다.

 

김제 여행을 준비하면서 전북투어패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다음 전북 여행 때에는 구매할 예정임.

 

담에는 김제맛집 100선 어플 QR코드 안내판이 달려 있다. 김제 맛집이 고민된다면 다운로드 받을 것.

 

입장료는 성인 개인이 3천원, 성인 단체가 2천원이다.

 

김제 시민이거나 6세 이하 65세 이상이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관람시간은 하절기 09:00~18:00 동절기 09:00~17:00다.

 

3월부터 10월 사이에는 야간(18:00~22:00)에도 운영하며 이 시간에는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벽골지문이라는 현판이 달린 거대한 나무 문을 지나면 좌측에 한옥으로 지어진 안내실이 있다.

 

벽골제 관람전 이곳에서 안내도를 꼭 챙길 것.

 

내부가 매우 넓어서 안내도가 없으면 갈팡질팡하게 된다.

 

안내실 옆에는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자전거를 대여하여 이동하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벽골제 관광 안내도에 따르면 벽골제 일원은 어마어마하게 광대하다. 전체를 둘러보려면 4~5시간은 필요할 듯하다.

 

 

 

 

안내실에서 벽골제 쪽으로 향하면 벽골제 공예 체험장과 기와가 놓인 한옥 스타일의 건물들이 있다.

 

매년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에 김제시에서는 김제 지평선축제가 열린다. 그 축제가 이곳 벽골제 일원에서 개최되는데, 한옥 스타일의 건물들은 그때 한몫을 할 듯.

 

 

 

 

석기 시대 사람들을 형상화한 싸리와 보리.

 

뱀 사냥을 나간 포즈인데, 뾰로통한 표정이 귀엽다. 캐릭터를 잘 뽑아낸 듯.

 

 

 

 

농경사 주제관·체험관 앞의 연못

 

얕은 연못이며 물이 매우 맑다. 물은 작은 수로를 통해 끊임없이 흘러내려 간다. 쉼 없이 돌아가는 물레방아가 눈을 즐겁게 한다.

 

 

 

 

농경사 주제관·체험관

 

옥상 전망대에 오르면 벽골제 일원의 전망이 시원하게 보인다.

 

 

 

 

농경사 주제관·체험관 앞의 생태연못을 지나면 제방에 나무 계단이 덩그러니 설치되어 있다.

 

계단을 오르면 사적 제111호 벽골제가 모습을 드러낸다. 역사책으로만 보던 벽골제를 실제로 마주하니 감격적이었다.

 

벽골제는 백제 11대 비류왕 27년(330)에 축조되었다. 신라 원성왕 6년(790), 고려 현종, 고려 인종 21년(1143), 조선 태종 15년(1415)에 중수된 우리나라 최초의 저수지이다.

 

 

 

 

쌍룡 조형물

 

조연벽이라는 사람의 꿈에 벽골제의 용이 나타나 흑룡黑龍이 벽골제를 빼앗으러 올 터이니 퇴치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다음날 조연벽이 활로써 흑룡을 물리치자 이에 대한 보답으로 벽골제 용은 조연벽의 자손이 대대손손 흥할 것으로 약속하였다.

 

 

 

 

생태연못

 

이건 정말 예상하지 못한 선물이었다. 작은 연못 위에 조성된 나무데크 산책로는 한적하고 편안했다.

 

 

1. 우리나라 최초의 저수지
2. 쌍룡 설화 등 벽골제에 얽힌 다양한 전설
3. 벽골제 일원 관광지를 다 보려면 최소 다섯 시간은 필요

 

 

 

 

 


6. 망해사

주소: 전북 김제시 진봉면 심포10길 94

 

앞선 관광명소와는 다르게 김제시의 숨겨진 명소이다.

 

그러나 인터넷 덕분에 or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숨겨진 명소가 아닌 게 되어 버렸다.

 

 

 

 

망해사로 올라가는 길 중간에 주차장이 있다. 망해사 입구 근처에도 승용차 서너 대의 주차공간이 있다.

 

주차장에서 망해사 입구가 멀지 않으므로 주차장에서 걸어가도 부담 없다.

 

망해사 입구 갈림길에는 표지판이 있다. 전망대에는 반드시 가야 한다. 반!드!시!

 

전망대로 가는 길은 새만금바람길의 일부분이다.

 

 

 

 

표지판이 있던 갈림길에서 4~5분 걸어 올라가면 3층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의 평범한 모습에 실망하면 안 된다.

 

2층과 3층 사이의 계단은 나선형인데다가 천장이 낮고 폭이 좁아서 머리와 발을 동시에 조심해야 한다.

 

3층에 오르면 김제시의 영문 조형물과 함께 만경강 일대가 눈 앞에 펼쳐진다.

 

사진으로는 도저히 전달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이 보는 이의 마음에 가득 찰 정도로 광활하고 목가적인 풍경이니 절대로 놓치지 말 것!

 

 

 

 

전망대에서 한동안 감상에 젖은 채 멍하니 있다가 망해사로 향했다.

 

망해사로 내려가는 길의 큰 은행나무 아래에서 모녀가 정겹게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내리막길이 끝나는 지점에는 덩굴이 휘감은 고목이 있다. 나무 종류는 확인 실패.

 

 

 

 

망해사는 전망대보다 낮은 곳에 있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만경강 뷰도 훌륭하다.

 

야산 아래 기와 건물의 정체는 해우소.

 

 

 

 

망해사 경내는 정말 미니미니하다. 관리는 정말 잘 돼 있다. 깨끗하다.

 

청조헌聽潮軒. 물의 흐름을 듣는 곳이라……. 절이 걸터앉은 장소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석탑과 범종각. 금산사처럼 유구한 시간의 흐름의 흔적을 느낄 순 없지만 절 앞 풍경 덕분인지 감성 포인트가 +2만큼 상승.

 

 

 

 

팽나무로 추측되는 고목과 배롱나무. 하나하나가 만경강이라는 거대한 화폭에 그려진 그림 같다.

 

조선 선조 22년(1589) 망해사를 중수한 진묵대사가 어느날 굴을 따서 먹으려 하였다.

 

지나가던 사람이 「스님이 육식을 하다니 별일이구먼」 하고 말하며 시비를 걸었다.

 

진묵대사는 「이것은 굴이 아니라 바위에 핀 꽃 즉 석화石花올시다」 하고 대꾸하였다.

 

망해사는 만경강뿐만 아니라 굴을 석화라고 부른 연원을 품고 있는 작지만 큰 사찰인 셈이다.

 

 

1. 숨겨진 듯하지만 숨겨지지 않은 김제의 명소
2. 전망대와 망해사에서 바라보는 만경강 view는 압권
3. 왜 굴이 석화石花라고 불리게 되었을까? 그 정답이 망해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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