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꽃게의 배에 고소한 알이 가득한 꽃게 철이었다.
몇 년 전부터 신진항에서 꽃게 매매가 활성화됐다는 블로그를 보고 신진항으로 급출발하였다. 사실, 꽃게는 서브 테마였고, 메인 테마는 작년 여름에 먹었던 「행복한 아침」의 홍합밥이었다.
고소한 홍합밥과 칼칼한 조개탕이 어찌나 생각나던지 신진항에 갈 핑계를 찾는 중이었는데, 꽃게가 그 구실이 된 셈이었다.
고속도로 휴게소 라면의 유혹도 떨친 채 9시 조금 넘은 시각에 드디어 신진항에 입성! 「행복한 아침」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어?
「행복한 아침」이 사라진 것이었다.
오랜만에 와서 헷갈린 건가? 「행복한 아침」이 있던 곳을 지나쳐 조금 더 나아가니 애증의 「정아횟집」이 나왔다. 어~? 정아횟집은 너무나도 당연히 문 닫은 상태.
기억을 더듬어 「행복한 아침」이 있던 곳으로 다시 향했다. 뼈대만 남은 건물에서 인부들이 작업 중이었다.
「혹시 여기가 행복한 아침인가요?」
「?」
인부에게 묻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아…. 그러면 혹시 여기가 식당이었나요?」
맞는단다. OTL... 리모델링 중인가 싶었다. 홍합밥 먹겠다고 몇 시간을 찾아왔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신진항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작년 7~8월 오징어 철의 활기찬 신진항은 온데간데없었다. 꽃게 판매점도 몇 군데 되지 않았다. 꽃게 시세를 물어보니 암꽃게 가격이 터무니없이 낮았다. 이유를 물었더니 냉동꽃게라는 설명이었다. 냉동꽃게가 활꽃게와 어떻게 다른지 잘 몰랐지만 사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기가 갑자기 몰려왔다. 신진항에 문을 연 식당이 몇 군데 있었지만 「행복한 아침」과 「꽃게」의 사건 때문에 가고 싶지 않았다. 태안 맛집을 급히 검색해 보았다. 태안서부시장에서 칼국수와 파전을 파는 「파전칼국수」가 레이더에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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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서부시장 옆에는 거대한 주차장이 있어서 주차는 편리하다. 향후 어찌 될진 모르겠지만 방문 당시 주차비는 무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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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시장은 가깝다. 사진에서 보이는 「남촌청과」 쪽으로 들어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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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내부는 넓고 깨끗했다. 10시가 조금 안 된 시각이었지만 시장에서 장을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바다에 접한 지역답게 해산물 판매점이 많았지만 채소 판매점도 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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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헤맸지만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식사시간 대에는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선다고 하던데 아침 이른 시각이라 대기 없이 바로 입장했다.
파전칼국수
주소: 충남 태안군 시장1길 34 9호
전화: 041-673-2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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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 들어서자 연예인들의 사인과 사진, 방송 스틸컷, 신문기사 등이 눈에 띄었다. 맛집일까? 맛집이어야 하는데…. 「행복한 아침」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마음이 심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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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은 좌식 네 개, 의자식 네 개. 식당은 두 명의 할머니께서 운영 중이었다. 물병에 든 거무스름한 물은 구수하니 맛이 좋았다. 물어보니 결명자차라고 했다. 그 이후 결명자를 사뒀는데 여태 끓이질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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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과 공포의 메뉴판. 판매하는 음식은 칼국수 단 한 가지. 가격은 4000원! 참고로 이 가격은 2019년 11월 1일부터 유지됐다. 파전은 아주 오래전부터 판매를 중단했다고 한다.
정말 중요한 사항은 카드결제와 계좌이체가 모두 불가능하다는 것. 요약하자면 현금을 직접 내라는 것. 요즘 시대에 잔돈 들고 다니는 경우가 드물어서 식사 후 소소한 트러블이 꽤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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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비주얼의 칼국수. 면발이 상당히 굵다. 바지락의 양은 그냥저냥 한 정도라고 생각했지만 칼국수 아래에 잔뜩 쌓여 있었다. 국물은 진하고 걸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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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락은 전반적으로 알이 굵고 통통했다. 우리나라에 바지락 칼국수 맛집이 얼마나 많은가? 바지락의 튼실함으로만 따진다면 상위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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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 위에 고명으로 올려진 들깻가루. 먹다 보면 바지락 먹기에 바빠서 들깨의 고소함을 감상할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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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박지. 중독적이다. 쫄깃한 면발, 진한 국물, 짭짤한 바지락과 함께 마치 한 몸처럼 어울린다. 이건 무조건 리필할 수밖에 없다. 직접 가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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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말한 면발의 적나라한 모습. 약간의 과장을 더 하면 수제비라고 해도 괜찮을 수준이다. 바지락은 먹어도 먹어도 끝이 보이질 않았다. 빈 그릇에 조개껍데기가 수북이 쌓여 패총(貝塚)을 이룬다. 해감은 잘 된 편인데 개중에 한두 개에서는 까끌까끌한 것이 씹혔다.
면발은 두껍지만 면의 양이 부족하다. 바지락은 이렇게 넣어줘도 장사가 되나 하는 걱정이 들 정도다. 국물은 맑고 개운한 대신 진하고 걸쭉하다. 석박지는 아…최고다. 그런데 가격은 4천원이다. 태안맛집으로 인정! 다만, 조미료를 사용하는 것으로 강하게 추측된다. 식사 한 시간쯤 후에 조미료의 뒷맛을 느꼈음.
어떤 할머니께서 칼국수를 혼자 들고 계셨다. 잠시 후 젊은 부부와 어린 남아가 식당 입장. 식사를 마친 할머니께서 꼬깃꼬깃하게 접힌 천 원 지폐 한 장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그 남아에게 주셨다. 자신의 손자가 떠올랐던 것일까? 그런데 남아의 부모는 무표정한 얼굴로 뻣뻣하게 앉아 있었다. 아들에게 할머니 손을 한 번 잡아 드리라고 해도 좋았을 텐데. 할머니는 천 원을 준 것만으로 만족한 표정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옛 정경이었다.
🔊🔊🔊
1. 수제비 같은 면, 진한 국물, 매콤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석박지
2. 식당의 운영을 걱정해야 할 정도인 바지락의 어마어마한 양
3. 조미료를 넣는 듯하지만 그래도 장점이 많은 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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