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오징어"라고 하면 으레 동해를 떠올리기 십상이었다. 초여름 때마다 묵호항이나 주문진항의 가판대에 수북히 쌓인 오징어를 사이에 두고 상인과 흥정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동해에만 형성되던 오징어 어장이 기후와 해수온도의 변화 때문에 요즘에는 서해에도 형성된다고 한다. 서울·수도권에서의 접근성은 동해보다는 서해가 양호하므로 서해의 오징어 어장은 반가운 소식이긴 하다. 서해의 오징어는 충남 앞바다에서 주로 잡힌다고 한다.
태안군 서쪽 신진도의 신진항은 충청남도의 대표 오징어 집산지다. 몇 년 전부터 오징어에 있어서는 전국 어느 항구에도 뒤지지 않는 rising star이다.
오징어 시황은 6월 말부터 달아오르기 시작하여 7월 말과 8월 초에 피크를 이룬다. 신진항에 가기 전날 태안에는 비가 내렸다. 날씨가 궂으면 오징어 조업에 지장이 생기고 당연히 오징어 값이 오른다. 작은 근심을 안고 신진항으로 향했다.
주차에 대해 말하자면 섬 전체가 주차장이다. 무료 공영주차장이 있지만 갓길에 주차한 차량들도 많았다. 밀려드는 관광객들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다.
▲ 오징어를 사려면 경매가 이루어지는 수협 위판장으로 가야 한다. 신진도에는 두 개의 위판장이 있는데 제1위판장으로 가면 된다. 위판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스티로폼 박스였다. 박스에는 오징어가 20마리씩 들어있다.
위판장에 도착했을 때에 오징어 경매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경매인이 뜻모를 말을 빠르게 중얼거리면 그 앞에 모인 매수인들이 알 수 없는 손짓으로 화답했다. 매수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고 힘찼다.
어선 100여 척이 매일 잡아 올리는 오징어가 15만 마리. 작년의 두 배, 재작년의 세 배에 해당하는 양이라고 한다. 오징어 대풍년 시대. 신진항 사람들의 표정이 밝을 수밖에 없다.
▲ 위판장은 일종의 도매 시장이므로 여기서 일반인은 오징어를 구매할 수 없다. 위판장 옆의 소매 가게에서 구매하면 된다. 눈 짐작으로 20여 곳쯤 되는 듯 싶었다. 소매 가게 앞은 오징어 반, 사람 반이었다.
▲ 위판장 바로 맞은편 부두에는 배 여러 척이 정박 중이었다. 비전문가인 내가 봐도 대부분 오징어 배틀쉽이었다. 새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신진항에 가려면 각별한 각오가 필요하다. 서울 도심 비둘기떼만큼이나 많은 갈매기들이 날아다니고 뛰어다닌다. 비둘기보다는 사람의 접근에 예민하지만 간간히 머리 위를 스치듯 날아가는 대담한 놈들도 있다.
▲ 건조 중인 오징어에 달라 붙은 새까만 점들은 파리였다. 근처 가판대에서 오징어 구이를 사먹을까 했는데 마음을 접었다. 숯불에 구울 때에 자연스레 소독되겠지만 이 광경을 보고 먹기란 쉽지 않았다.
▲ 위판장에서 경매를 거쳐 소매 가게로 넘어온 오징어가 가게마다 박스째 쌓여 있었다. 가격은 박스 당 대략 4만 원,고 A급은 5만 원 내외였다. 2천 원을 더 주면 오징어 20마리의 내장을 전부 빼내어 준다. 무조건 받아야 할 유료 서비스.
오징어배는 출항하면 3일 가량 조업을 하며, 귀항 당일 잡은 것이 가장 비싸다고 한다. 색상도 당일 잡은 것은 진한 초콜릿색을 띠고 전날 잡은 것은 하얀색이 올라온다고 한다. 3일 전에 잡은 것이나 당일 잡은 것이나 맛의 차이는 거의 없다는 소매 상인의 귀띔.
▲ 신진항에는 오징어만 넘쳐나는 것이 아니었다. 갖가지 생선과 조개들이 가게마다 그득 쌓여 있었다. 조개 매니아인 내게 신진항은 별천지이자 신세계였다. 전복, 소라, 백합, 홍합, 바지락, 비단조개 등등. 다시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당일엔 오징어만 샀는데 조개류를 왜 안 샀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 위판장 뒤편에도 판매점이 있었는데 앞쪽 소매점보다는 규모가 컸다. 도매와 소매의 중간 단계 또는 소규모 공장? 가격을 물어봐도 시큰둥해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앞쪽 소매 가게에서 이미 오징어를 대량 구매했기에 아쉽지는 않았다.
전국의 많은 항구를 다녀봤지만 신진항처럼 다이나믹한 곳은 처음이었다. 무료한 삶으로부터의 탈출을 원하는 사람에게 7월의 신진항을 강력히 추천한다. 확실한 효과를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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