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관광지는 주왕산과 주산지일 것이다. 울긋불긋한 가을 단풍을 차려입은 주왕산과 주산지는 청송군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절경이다.
여느 관광객처럼 나 또한 매년 가을마다 주왕산 또는 주산지에 들렀다가 길가에서 청송 사과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어느 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무심코 집어든 청송군 관광지도에는 주왕산과 주산지 외에 수많은 관광명소들이 표기되어 있었다.
이후 관광지도를 벗 삼아 청송의 다양한 명소들을 누빈 지 수 년이 흘렀다. 높은 산과 깊은 계곡 곳곳에 숨겨진 청송군의 비경(秘景) 중에서 〈길안천(吉安川)〉 3대 명소를 소개하고자 한다.
청송군 서쪽에 위치한 길안천은 청송군 현서면 월정리에서 발원하여 안동시 반변천과 합류한 뒤 낙동강으로 이어져 남해로 나아가는 하천이다. 청송의 심산유곡에서 시작된 시냇물이 남해 먼 바다로 흘러 나아가는 자연의 섭리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오묘하다.
길안천에 접한 68번, 908번, 930번 도로는 인적이 드물고 기암괴석과 사과 농장이 끝없이 펼쳐지는 매력적인 드라이브 코스이지만 세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아 호젓하고 여유롭다.
길안천 주변의 십여 개 관광명소들 중에서 나의 최애 핫플레이스인 방호정, 만안자암단애, 백석탄 계곡에 대해 알아보자.
1. 방호정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51호인 방호정은 1619년 조준도가 지은 정자이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몹시 그리워했던 조준도는 모친 안동 권씨의 묘가 보이는 이곳에 정자를 건립했다. 건립 당시 정자의 이름은 어머니를 생각한다는 뜻에서 사친당(思親堂) 또는 풍수당(風樹堂)이라고 하였다.
내비게이션에 〈방호정〉을 입력하고 출발하면 방호정 주차장에 다다른다. 주차장 주위에는 식당과 사과 농장 들이 있다. 사과걷이 때여서 사과를 담은 노란 박스들이 주차장에 가득했다. 주차비는 소형차 기준 주간 5,000원이었는데 주차장 관리인은 없었다. 주차장 한쪽에는 청송군 〈녹색길 지질탐방로〉 안내판이 있었다.
주차장에서 몇 걸음을 옮기면 거대한 철제 다리와 깎아지른 절벽 위에 놓인 방호정이 보인다. 녹색 끼가 도는 절벽에 사선 무늬가 선명하다.
방호정교는 청송 출신 재일교포 조학래(趙鶴來)씨가 기증한 건설 기금으로 2005년에 가설되었다.
방호정교 위에서 바라본 방호정, 길안천 상류 방향, 길안천 하류 방향
방호정교를 건너면 집이 한 채 있다. 벤치에 누워 만추(晩秋)를 즐기던 고양이가 인기척을 느끼고 경계자세를 취했다. 사나운 눈매와는 달리 얌전한 성격이어서 사진 여러 컷을 찍을 동안 잠자코 포즈를 취해 주었다.
방호정에 앞서 하류 쪽 방면을 둘러보았다. 길안천을 둘러싼 암벽의 위용이 압도적이었다.
방호정에 들어가는 송하문(松霞門), 학문을 강론했던 방대강당
정면에서 보면 일자형 건물이지만 뒤에서 보면 건물 왼쪽에 뒤로 방을 낸 ‘ㄱ’자형 건물이다. 정면 두 칸, 측면 두 칸인데 왼쪽 대청마루 뒤에 두 칸 규모의 온돌방이 배치되어 있다. 측면은 팔작이고 전면은 맞배지붕 구조이다.
방호정 현판
방호정에서 바라본 방호정교와 주차장. 나뭇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에 딱 하나 달라붙은 낙엽이 애처로웠다.
2. 만안자암단애
만안자암단애는 청송군 안덕면 지소리 만안 삼거리의 길안천 변에 있다. 자암(紫巖)은 붉은 바위라는 뜻이며 적벽으로 불리기도 한다. 만안자암단애는 신성계곡의 대표 절경 중 하나이다. 현지에서는 "붉은덤"으로 불리는 듯하다.
만안자암단애는 진입로도 협소하고 주차장도 없으므로 도로에 주차 후 걸어 들어가야 한다.
자암을 이루는 암석은 중생대 백악기(약 1억 2천만 년 전)의 퇴적암이다. 만안자암단애는 땅속에 깊이 묻혀 있다가 지각의 융기로 인해 지표면으로 올라온 후 오랜 세월 동안 풍화와 침식을 받고 강물에 의해 깎여 나가 만들어진 자연의 걸작이다.
백여 미터가 넘는 수직 절벽이 길안천에 내리꽂힌 듯한 만안자암단애의 위용은 부안의 채석강에 버금간다. 방호정에서는 잔잔하던 길안천의 물결은 만안자암단애에 이르러 비로소 다소 거칠어진다.
만안자암단애 하류 방향에는 징검다리처럼 보이는 큰 돌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었다.
만안자암단애 맞은편 집 현관의 옥수수들이 정겨웠다. 앞마당에는 화려한 꽃들이 많았다. 만안자암단애에 어울리는 집이었다.
3. 백석탄 계곡
누군가 내게 청송의 최고 명소를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백석탄 계곡이라고 답할 것이다. 자연의 걸작품들에 순위를 매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백석탄 계곡의 임팩트는 그만큼 대단하다.
백석탄 계곡은 고와리 일대에 있는데 이 동네가 고와리라고 불리게 된 연유가 흥미롭다.
임진왜란 당시 한 의병장이 청송과 안동의 경계인 가랫재에서 왜군과 전투를 벌였으나 대패하고 쫓기다가 이곳에 이르렀다. 하룻밤을 보내고 새벽에 눈을 뜨니 자욱한 물안개 속에 비죽비죽 솟아난 하얗고 거대한 돌들이 보였다. 이곳의 비경이 얼마나 장엄하고 평화로웠는지 의병장은 자신이 죽어서 천상에 왔다는 착각에 빠졌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는 이곳의 바위도 곱고 마음 또한 고와지는 곳이라 하여 이곳을 고와리로 불렀다고 한다.
백석탄 계곡은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내비게이션에 백석탄 계곡을 입력하면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없는 도로에 도착하기 십상이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알아낸 꿀팁을 공유한다. 내비게이션에 〈백석탄로 258〉을 입력하면 백석탄 계곡으로 내려가는 샛길에 도착할 수 있다. 다만 별도의 주차장이 없으므로 갓길에 주차해야만 하니 주의할 것.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에 좋은 글귀가 적힌 팻말 여러 개가 박혀 있다. "배운 것 만치 영감이 따른다"는 문구가 가슴에 와 닿았다.
깊은 산속에 꼭꼭 숨겨진 이곳을 어찌 알았을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계곡에 내려와 백석탄 계곡의 신비로움을 감상 중이었다.
계곡에 내려서면 아래와 같은 광경이 펼쳐진다. 외계 행성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백석탄은 "하얀 돌이 반짝이는 개울"이라는 뜻으로서 개울 바닥의 흰 바위가 오랜 세월동안 깎여서 만들어진 지형이다.
기존 암석이 풍화와 침식을 받아 잘게 부서진 후 쌓여서 굳은 암석을 퇴적암이라고 한다. 퇴적암 중에서 모래 알갱이가 굳어져 형성된 것을 사암이라고 하는데, 백석탄 계곡 일대는 흰색의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백석탄의 바위들이 흰색을 띄는 이유는 모래알갱이 중에서도 풍화와 침식에 강한 석영 입자들이 이곳의 사암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망원렌즈를 장착한 DSLR 카메라를 삼각대에 장착하고 물의 흐름을 장노출로 촬영하는 사진사들이 여럿 있었다. 나도 그들 틈에 끼어 장노출 사진 몇 장을 찍어 보았다. 백석탄 계곡은 청송군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사진 포인트로 유명한 곳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청송군 길안천 3대 명소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에 맞춰 분위기와 운치가 달라지는 매력적인 곳들이다. 청송의 숨겨진 매력을 만끽하고픈 사람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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