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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맛집

사천 조명군총(2016.03): 임진왜란, 화약고, 조명연합군의 패배

by AOC 2016.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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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군총(朝明軍塚)은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에 있다.

 

 

1597년 정유재란을 일으킨 왜군은 연이은 패전으로 인해 남해안 지방으로 퇴각했다. 왜군은 울산에서 순천까지의 800여 리 해안을 따라 성을 구축한 후 농성을 시작했다.

 

1598년 진주와 곤양 등지에서 연패한 조·명 연합군은 10월 초하루에 선진리성을 포위 공격하였다. 어느 날, 연합군의 화약고가 폭발하여 전열이 흐트러졌다. 이 틈을 놓치지 않은 왜군이 성 밖으로 뛰쳐나와 연합군을 공격하니 연합군은 수많은 사상자를 남긴 채 퇴각하였다.

 

왜군은 조·명 연합군 사상자의 귀와 코를 잘라 소금상자에 넣어 일본으로 보냈다. 승리의 전과를 알리기 위함이었다. 시체의 나머지 부분은 한데 모아 무덤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조명군총」이다.

 

무덤은 원래 선진리성 앞에 있었지만, 악취가 심해 현재의 장소로 옮겼다고 한다.

 

 

 

 

사천-관광명소-가볼만한곳-조명군총-임진왜란

▲ 조명군총은 선진리성에서 가깝다. 선진리성을 보러 갈 때에 조명군총에 잠시 들러도 전혀 부담이 없다.

 

조명군총은 야트막한 석축 위에 조성되어 있다. 화약고 폭발과 왜군의 기습으로 인한 아수라장 속에서 죽어간 조선군과 명군의 시체들이 이 자그마한 무덤 속에 뒤엉켜 묻혀 있는 것이다.

 

 

 

 

▲ 조명군총 근처에는 「이총(耳塚)」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조선인들의 귀와 코를 베어낸 후 소금에 절여 일본으로 보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에서 건너온 전리품을 교토 토요쿠니 신사 앞에 묻고 「이총(耳塚)」이라고 명명했다.

 

1992년 4월 사천 문화원과 삼중 스님은 이총의 흙 일부를 항아리에 담아와서 제(祭)를 지내고 조명군총 옆에 안치했다고 한다.

 

 

 

 

유적지 자체와 부근의 관리 상태는 양호하다. 주차장도 넉넉해서 주차도 편리하다.

 

다만 이곳을 찾는 사람의 수는 전무(全無)에 가까울 정도였다. 역사적 의의말고는 관광객을 유인할 만한 요소가 없다는 게 이곳의 한계.

 

 

 

 

🔊🔊🔊

1. 사천 선진리성과 지척

2. 임진왜란의 참혹했던 역사적 현장

3. 관람하는 동안 다른 관광객은 1도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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