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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사디스트

by AOC 2016.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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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시간 20분 전. 마음이 절로 급해진다.

 

주차하고 약속 장소까지 걸어가기에 빠듯한 시간이다.

 

지하주차장에 빈자리가 하나도 없다.

 

일렬주차하기에 주차장 통로는 너무나도 비좁다.

 

주차장을 계속 돌아보아도 몸만 달아오를 뿐이다.

 

 

 

 

가죽점퍼를 입은 멋진 남자가 자기 자동차 쪽으로 걸어간다.

 

가죽남, 당신은 천사야.

 

가죽남이 차를 쉽게 뺄 수 있도록 내 차를 멀찍이 물린다.

 

차를 빼라고 압박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가죽남은 내 차를 힐끗 쳐다보더니 차에 올라탄다.

 

멋쟁이, 고마워요. 얼른 나가주세요. 정말 급하거든요.

 

맘속으로 간절히 속삭인다.

 

 

 

가죽남은 시동을 걸지 않는다.

 

운전대 위로 스마트폰을 들어올리고 뭔가를 검색한다.

 

갈 길을 찾는 거겠지.

 

스마트폰을 내린다.

 

출발하려나보다.

 

 

 

 

가죽남은 시동을 걸지 않는다.

 

선바이저를 내리더니 턱을 쳐들고 얼굴을 좌우로 돌린다.

 

여자친구가 얼굴을 할퀴기라도 했던 걸까.

 

선바이저를 접는다.

 

출발하려나보다.

 

 

 

 

가죽남은 시동을 걸지 않는다.

 

어딘가에 전화를 걸더니 깔깔대며 통화한다.

 

흥에 겨운지 핸들을 손바닥으로 내리친다.

 

 

 

 

인내심이 증발한 자리에 분노의 화염이 거세게 타오른다.

 

차를 뺄 건지 말 건지 직접 가서 물어볼 수밖에 없다.

 

 

 

 

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가죽남 자동차 맞은편에 있는 흰색 승용차에 젊은 커플이 올라탄다.

 

남자가 말할 때마다 여자는 박수를 치며 환하게 웃는다.

 

내게도 그 행복을 나눠 주렴.

 

그들은 차에 타자마자 시동을 걸고 바로 출발한다.

 

행복하시길.

 

 

 

 

약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커플이 남겨준 빈자리로 차를 몬다.

 

가죽남이 갑자기 시동을 걸더니 차를 통로로 들이민다.

 

내 차와 가죽남의 차가 좁은 통로에서 뒤엉킨다.

 

 

 

 

그를 더이상 가죽남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는 '가축남'이다.

 

가축남은 내 차를 뒤로 빼라는 수신호를 보낸다.

 

차에서 내린다.

 

가축을 길들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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