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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맛집

음성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2016.09): 기적의 산실

by AOC 2016.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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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이하 감곡매괴성당)은 충북 음성의 유서 깊은 성당이다.

 

붉은 벽돌의 고딕 양식 건물로 유명한 감곡매괴성당은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신비로운 일화를 간직한 곳이다.

 

 

충주 돌집식당에서 귀경하는 길에 있을 뿐만 아니라 15분 거리여서, 오랫동안 궁금해했던 이곳을 탐방할 좋은 기회였다.

 

 

 

 

「매괴 성모 순례지」 비석.

 

「매괴(玫瑰)」는 가톨릭의 묵주(로사리오)를 중국에서 부르던 호칭이다. 성당 이름에 "매괴"와 "성모"가 들어간 것에서, 이 성당이 성모 마리아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붉은 벽돌과 뾰족한 첨탑의 첫인상이 강렬했다. 외형은 명동성당과 유사하다. 성당 앞 널찍한 공터 한편에는 나무탁자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하늘이 흐려서인지 벽돌의 붉은색이 무거워 보였다. 화창한 날이라면 이보다 더 화사해 보일 듯.

 

 

 

 

감곡매괴성당의 연혁. 감곡매괴성당의 건립자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프랑스인 카미유 부이용(Camille Bouillon) 신부이다. 이 성당의 주보성인은 「성모 마리아」이다. 관할공소는 경기도의 여주·안성·이천(일부), 충청도의 단양·제천·충주·음성·괴산·진천·보은·청주 등이다.

 

 

 

 

감곡매괴성당의 건립자인 카미유 부이용 신부의 동상. 부이용 신부의 한국식 이름은 임 가밀로이다. 동상 아래에 새겨진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라는 임 가밀로 신부의 말의 울림이 크다.

 

 

 

 

감곡매괴성당의 조형물. 감곡매괴성당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이동 운반되는 미니어처 성당이다. 2009년 5월 22일에 제작되었다고 한다.

 

 

 

 

성당 입구에서 올려다본 첨탑. 1930년에 지어진 건물답게 고풍스러운 멋을 잔잔히 뿜어낸다. 첨탑 아래의 시계는 stylish하다. 저 디자인 그대로 손목시계로 만들어도 멋질 것 같다.

 

 

 

 

충북 음성의 한적한 시골마을에 위치한 성당이지만, 로마 성모 대성전과 영적 유대로 결합된 성전이자 성모 순례지로 인증받은 곳이다. 로마 성모 대성전은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으로서 로마 4대 성당 중 하나이다. 2009년에는 전대사 특전이 부여되기도 했다. 가톨릭에서 이 정도로 관심을 표명한 우리나라 성당이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이었던 임 가밀로 신부는 1894년 감곡매괴성당 근처 여주 부엉골 본당에 부임하였다. 그는 본당의 위치가 사목에 적합하지 않아 본당을 이전할 만한 곳을 찾던 중 매산 아래에 자리잡은 으리으리한 집을 보게 된다. 그 집은 명성황후 육촌 오빠인 권세가 민응식의 집으로서 임오군란 당시 명성황후가 피신한 곳이기도 하였다.

 

임 가밀로 신부는 성모님께 저 집의 터를 자신에게 허락해 주신다면 성모님을 위한 성당을 짓겠노라고 기도했고, 이후 알 수 없는 일련의 일들이 벌어져 임 가밀로 신부가 그 집터와 매산을 매입하게 되었다.

 

 

 

 

성당 터는 어찌어찌 매입했지만 성당 건립은 쉽지 않았다. 당시는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이 터에 신사神社를 지으려고 들었다. 성당 짓기에 좋아보이는 터는 신사 짓기에도 좋아보였을 것이다.

 

신사 공사를 막을 수 없었던 임 가밀로 신부는 또 성모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드렸다. 희한하게도, 신사 공사를 시작하려고 하면 좋았던 날씨가 악천후로 변하거나, 야생동물들이 몰려들거나, 인부들이 다치는 일들이 벌어졌다. 이에 신사를 지으려던 계획은 철회되고야 말았다.

 

 

 

 

임 가밀로 신부는 일제시대에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해 많을 일을 하였다. 임 가밀로 신부의 행적에 불만이 많았던 일본은 임 가밀로 신부를 감옥에 가둔 후 사형을 선고했다.

 

임 가밀로 신부는 사형당하기 전에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하길 원했고 일본은 이를 승낙했다. 감곡매괴성당으로 돌아와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하던 중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형은 당연히 취소되었다.

 

 

 

 

기묘한 일은 6.25 전쟁 당시에도 벌어졌다. 성당을 임시본부 겸 막사로 삼았던 인민군들이 공포에 질려 성당 밖으로 뛰쳐나간 것이다. 제대 뒤 위편에 모셔진 성모상은 기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루르드에서 제작되어 우리나라로 운반되었다.

2019.06.16 - [여행&맛집] - 음성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2019.06): 성당을 보호하는 성모 마리아의 손길

 

 

 

 

내부 장식이나 시설에서 시간의 흐름을 역력히 읽을 수 있었다. 「자비의 문」이라고 불리는 정문 위는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었다. 벽면 창문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화려하진 않지만 자칫 밋밋하고 건조할 수 있는 성당 내부에 활력과 다채로움을 준다.

 

 

 

 

성당 정문에서 바라본 감곡 일대의 전경

 

 

 

 

「매괴박물관」에는 성당과 관련된 여러 물품이 전시되어 있다.

 

 

 

 

매괴박물관에서 나와 성당 주위를 둘러보았다. 보면 볼수록 명동성당과 유사하다. 임 가밀로 신부가 성당을 지을 때 명동성당과 똑같이 지으려고 했으나 여건이 좋지 않아 규모를 줄여 지었다고 한다. 크기만 작을 뿐 건축 DNA는 명동성당과 공유하는 셈이다.

 

 

 

 

수많은 기적과 명성을 품은 성당답지 않게 오가는 사람은 드물었다. 편안하고 아늑한 곳이다.

 

 

 

 

🔊🔊🔊

1. 고딕 양식의 고풍스러운 성당

2. 성당을 둘러싼 신비로운 이야기

3. 인민군을 굴복시킨 성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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