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는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소개되면서 세간의 관심이 증폭된 사찰이다. 물론, 이전에도 국내 최고(最古) 목조건축물인 무량수전(無量壽殿)을 보유한 곳으로서 유명세를 떨쳤다. 국내 최고 목조건축물의 명예는 최근에 안동 봉정사의 극락전으로 넘어가긴 했지만.
오래전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부석사에 갔던 기억이 아스라이 남아 있다. 무량수전과 대웅전을 쓱 훑어 본 것 같은데 도대체 뭘 봤던 건지 도통 생각나지 않았다.
한여름의 무더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던 8월 하순. 동해안으로의 여행 코스에 부석사를 포함시켰다.
▲ 주차장은 크고 쾌적했다. 유명 관광지답게 식당과 가판대가 즐비했다. 안내판에는 주차장에서 부석사까지 도보로 500미터 거리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 초입은 아스팔트 길이었다. 늦여름답게 풀과 나무 모두 녹색이 정점을 찍었다. 뜨거운 햇볕과 무더운 공기 때문에 부석사로 걸어가는 게 쉽지 않았다.
▲ 아침 이른 시각이라 사찰로 가는 길은 조용하고 차분했다. 가판대는 모두 정리된 상태. 부석사 관람을 마치고 돌아 나올 때에는 가판대 여러 곳이 영업 중이었다.
▲ 부석사 관람요금
▲ 부석사 일주문. 현판에 「태백산 부석사」라고 쓰여 있다. 지도상으로 부석사의 진산(鎭山)은 봉황산인데, 왜 태백산으로 적었는지는 알 수 없다.
주차장에서 일주문까지는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평상시라면 걷는 데에 큰 무리가 없는 길이었지만, 햇볕과 더위 때문에 만만치 않았다. 일주문을 지나면 은행나무가 늘어선 흙길이다.
▲ 부석사 당간지주(보물 제255호)
절에 법회·기도 등의 행사가 있을 때에 절 입구에 다는 깃발이 「당(幢)」이다.
당(幢)을 달아두는 깃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는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개의 돌기둥을 당간지주(幢竿支柱)이다. 부석사 당간지주의 높이는 428cm이다.
표면에 새겨진 세월의 흐름은 숨길 순 없지만, 곧고 매끈한 당간지주의 유려함은 시대를 넘어 현재까지 잘 유지되어 있었다.
▲ 당간지주를 지나면 「천왕문」이 나타난다. 으레 그렇듯이 천왕문 내부에는 사천왕상이 자리한다. 천왕문에서 조금 전에 걸어 올라온 길을 되돌아봤다. 낯설었다.
▲ 천왕문을 지나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가면 드디어 시야가 트이며 부석사 전경이 드러난다. 보수 중인 탑은 「부석사 삼층석탑」. 부석사에서 200여 미터 떨어진 옛 절터에 있던 것을 옮겨 왔다고 한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0호이다.
▲ 「안양루」. 멀리서 보면 처마 밑의 뚫린 부분이 마치 불상(佛像)처럼 보인다고 하여, 얼마 전 TV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직접 와서 보니 그럴듯했다.
▲ 사방이 푸르른데 빨갛게 꽃이 피어난 배롱나무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숨통을 다소간 틔워 주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서서 바라보는 소백산맥도 대단하지만, 봉황산에 파묻힌 부석사를 바라보는 것도 일품이었다.
▲ 범종루. 범종루의 현판에는 「봉황산 부석사」라고 적혀 있다. 하늘을 향해 슬며시 말아 올려진 지붕의 유려한 곡선에 잠시 발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범종루를 구성하는 나무들의 앤틱한 색상은 덤이었다.
▲ 범종루 아래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안양루」가 보인다.
안양루는 무량수전 앞마당 끝의 누각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무량수전과 함께 하나의 영역을 형성한다. 「안양(安養)」은 안양정토(安養淨土)의 줄임말로서 극락세계를 뜻한다. 안양루 하단의 안양문은 결국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인 셈이다.
안양문을 통과하면 무량수전이 나오므로, 부석사의 무량수전은 극락세계인 셈이다.
▲ 부석사 무량수전과 무량수전 앞 석등.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의 팔각 석등이다. 불을 밝히는 화창(火窓) 사이의 네 면에 정교하고 세련된 보살상(菩薩像)이 새겨져 있다. 일견 평범해 보일 수도 있지만, 무려 국보 제17호이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주불전으로서 아미타여래를 모신 곳이다.
아미타여래는 무한한 지혜와 생명을 지녔으므로 무량수불(無量壽佛)이라고도 불린다. 내부에 국보 제45호인 「소조 아미타여래 좌상」이 모셔져 있다.
무량수전 옆에서 바라보는 풍경. 소백산맥이 마치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부석사를 향해 밀려오는 듯하다.
▲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소조(塑造) 불상은 진흙으로 만들어진 불상을 뜻한다. 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진흙을 덧붙여 만든다.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은 우리나라 소조불상 중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작품으로서 높이가 2.78미터에 달한다. 협시보살 없이 독존으로만 동향(東向)으로 모셔진 점이 특징이다.
▲ 무량수전과 함께 부석사의 2대 시그니처로 알려진 「부석(浮石)」
의상 대사가 당나라에서 화엄학을 공부할 때에 선묘(善妙)라는 여인이 그를 연모했다. 의상 대사가 학업을 마친 후 배를 타고 신라를 향해 떠났을 때에 이 소식을 뒤늦게 들은 선묘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녀는 용(龍)으로 변신하여 의상 대사가 탄 배를 신라까지 안전하게 호위하였다.
의상 대사가 봉황산 중턱에 절을 지으려고 할 때에 여기에 터를 잡고 살던 이교도들이 방해하였다. 이때 선묘가 바위를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기적을 보여 이교도를 제압하였다. 선묘가 들어 올린 바위가 바로 「부석(浮石)」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바위의 위아래 사이에 약간의 틈이 있어서 줄을 넣어 당기면 걸림 없이 드나들어, 떠 있는 돌임을 알 수 있다"라고 적혀 있다.
▲ 선묘각. 무량수전 북서쪽 모서리에 있다. 내부에 선묘의 영정이 걸려 있다.
▲ 조사당(祖師堂). 무량수전과 부석에만 매몰되면 놓치기 쉬운 곳이다.
조사당은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 대사의 상(像)을 모신 곳이다. 조사당이 유명한 이유는 조사당 앞에 핀 「선비화」이다.
전설에 따르면, 의상 대사가 자신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조사당 처마 밑에 꽂았더니 가지가 돋고 잎이 피었다고 한다. 조사당 처마 밑에서 비와 이슬을 맞지 않고서도 1300년 이상 푸르름을 유지하여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 주차장 근처의 작은 공원. 아침에는 텅 비어 있었던 주차장이 꽤 차 있었다. 희한하게도 부석사에서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동안 마주친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다들 어디 간 걸까. 주차장 옆 식당들이 북적거렸다.
🔊🔊🔊
1. 무량수전과 부석(浮石)
2. 무량수전에서 바라보는 압도적인 풍경
3. antique & elegance
'여행&맛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울진 사랑바위(2016.08): 절벽 아래 슬픈 전설 (0) | 2016.08.24 |
---|---|
봉화 까치소리(2016.08): 알쏭달쏭 (0) | 2016.08.23 |
매드포갈릭 서울 도곡점(2016.08): 상큼한 크림 리조또 (0) | 2016.08.07 |
매드포갈릭 서울 도곡점(2016.07): 지중해 특별 초대권의 늪에 빠지다 (0) | 2016.08.07 |
하남 창모루(2016.07): 검단산 맛집의 칼제비 (0) | 2016.0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