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한 기적 소리와 함께 기차가 멈추자 칠흑 같던 객실에 전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창문에 낀 서리를 손으로 닦아내자 수많은 군인들과 전투장비들이 플랫폼에 집결하는 분주한 광경이 보였다. 나와 철원군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군 복무 중이던 어느 날 우리 부대는 다른 부대와 쌍방훈련을 하게 되었는데 훈련지역이 철원군이었다. 일주일간의 훈련 기간 동안 철원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훈훈한 인심에 매료되었지만, 부대 복귀 후 철원에서의 풋풋했던 추억은 서서히 사라져 갔다.
전국 지도를 펼쳐놓고 올가을여행을 계획하다가 문득 철원에서의 오래된 추억이 떠올랐다. 돌이켜 보니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임에도 불구하고 철원을 제대로 돌아본 적이 없었다.
오랫동안 끙끙대며 나름대로 훌륭한 당일여행코스를 만들어냈는데, 아뿔싸,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철원군에 퍼졌다는 뉴스가 발표되었다. 철원과의 인연을 다시 맺기가 이렇게 어려울 수가. 아프리카돼지열병 격리지역을 제외한 당일여행코스와 여행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1. 철원군 이모저모
철원(鐵原)군은 동쪽으로 화천군, 서쪽으로 연천군·포천시, 남쪽으로 포천시, 북쪽으로 북한 평강군·김화군에 접한다. 철원군의 군화(郡花)는 철쭉, 군목(郡木)은 잣나무, 군조(郡鳥)는 두루미다.
후삼국시대에는 궁예(弓裔)가 〈태봉(泰封)〉을 건국하고 도읍을 철원에 두었다. 1945년 해방 당시에는 철원군 전 지역이 북한에 예속되어 수많은 양민과 반공투사들이 고문당하거나 학살당했다. 6.25 전쟁 때에는 철원군의 〈백마고지〉와 〈철의 삼각지대〉에서 국군·UN군과 공산군 간의 처절한 전투가 벌어졌다.
DMZ·한탄강·철새도래지 등이 철원의 대표적 관광지이며, 〈철원 오대쌀〉은 특유의 맛과 찰기로 명성이 자자하다.
2. 여행코스 수립
한때 철원은 교통의 오지였지만 세종포천고속도로 개통으로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효율적인 여행을 위해서는 꼼꼼한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철원군의 도로와 주요관광지가 일목요연하게 표기된 철원 관광지도와 안내책자를 아래 사이트에서 미리 신청해 두자.
철원군 관광지도·안내책자 신청
http://www.cwg.go.kr/site/tour/boardList.do?boardSeq=68&key=408&part=4300030
3. 철원으로 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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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마고지전적지 |
주소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산명리 |
안내전화 |
033-450-5558 |
입장료 |
무료 |
데자 뷰(deja vu). 처음 보는 대상이나 장소가 이미 경험했던 것처럼 느껴지는 현상을 뜻한다.
〈백마고지전적지〉는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데자 뷰 지역일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백마고지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지만 실제 가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 또한 그러했다.
10월 말의 철원은 단풍철이 훌쩍 지나 황량한 느낌이었다. 이른 아침 백마고지전적지의 풍경 또한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지만 오히려 그러한 분위기가 백마고지전적지의 엄숙함을 더해 주었다.
백마고지전적지 광장의 백마 상(像)이 앞발을 힘차게 치켜들고 방문객을 맞이했다. 백마고지에서 중공군을 패퇴시킨 국군의 드높은 기개가 엿보였다. 백마 상에서 조금 비켜서자 태극기가 도열한 오르막길과 위령비가 보였다.
백마고지 전투는 6.25 전쟁에서 가장 치열하고 피비린내 나는 전투였다. 국군 제9사단이 점령한 백마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1952년 10월 6일 중공군 제38군 4만 4천여 명이 대공세를 감행했다. 10일 간의 전투 동안 무려 30여만 발의 포탄이 395m의 야트막한 고지에 퍼부어졌다. 국군의 결연한 의지에 직면한 중공군은 1만여 명이 전사·부상 당했거나 포로가 되었다. 국군은 3500여 명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했다. 국군의 빛나는 승리였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 좌우에 도열한 태극기들이 늦가을 바람에 힘차게 펄럭였다. 태극기 뒤쪽에 늘어선 자작나무들은 모두 625그루이며,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6.25 전쟁을 뜻한다. 오르막길의 경사는 그리 급하지 않았다.
백마고지 위령비
백마고지에서 희생된 국군의 영혼을 진혼하기 위해 건립된 비석이다. 국가·자유·가족을 지키기 위해 초개처럼 스러져 간 선열들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위령비 옆에는 〈6.25 시계〉가 있었다. 시계는 삼면(三面)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0시 15분을 가리키는 좌측면 시계는 국군의 승리일자를, 6시 25분을 가리키는 전면 시계는 6.25 전쟁을, 9시 5분을 가리키는 우측면 시계는 당시 참전부대였던 9사단과 현재 이 지역을 담당하는 5사단을 뜻한다.
근처 잔디밭에는 우리나라 지도가 꾸며져 있었다. 제주도·울릉도·독도의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위령비를 지나 전망대로 가는 소나무 길은 운치가 있었다. 전망대 〈상승각(常勝閣)〉에는 〈자유의 종〉이 있지만 타종할 수 없었다. 주요 행사가 있을 때에만 타종하는 듯했다.
저 멀리 보이는 야산이 당시 피와 포탄이 어우러졌던 백마고지였다. 30여만 발의 포탄으로 민둥산이었던 백마고지는 푸른 나무로 뒤덮여 백마라는 표현이 더는 어울리지 않았다. 순국선열들의 피와 땀으로 철원군 전역이 대한민국 영토로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왔다고 생각하니 발을 디딘 이 땅의 가치가 한없이 크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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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노동당사 |
주소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 |
안내전화 |
033-450-5558 |
입장료 |
무료 |
여행계획을 짤 때에 처음에는 여행코스에서 제외한 곳이었다. 철원이 북한 공산당 치하에 있었을 때에 수많은 양민과 자유민주주의자들이 무참히 고문당하다가 도륙당한 곳이어서 왠지 으스스했기 때문이다.
노동당사는 철원군 조선노동당이 1946년에 시공하여 그해 말에 완공한 러시아식 건물이다. 〈인민〉을 위해 짓는다는 명분으로 〈인민〉의 쌀과 돈과 노동력을 착취하여 만든 모순덩어리이다. 비밀 유지를 위해 건물 내부는 사상이 투철한 공산당원들만이 작업했다고 한다.
6.25 전쟁 이후 노동당사 뒤편 방공호에서 발견된 수많은 유골·총탄·철사 등은 이곳에서 벌어진 고문과 학살의 참상을 생생히 증언하였다.
건물의 안팎 여기저기에 세월과 포탄의 흔적이 어지러이 섞여 있었다. 이곳에서 북한 인민군과 노동당이 벌인 끔찍한 죄악을 노동당사가 대신 온몸으로 참회하는 듯했다.
공산주의 치하에서는 공포와 억압의 장소였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노동당사의 골조를 통해 바라본 하늘은 푸르고 자유로웠다.
노동당사 앞 조형물의 작품명은 〈두근두근〉이며 통일을 염원하는 사람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가슴의 하트 모양은 통일을 기대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이라고 한다. 하트 아래의 LED 보드에는 분단된 기간이 시간·분·초로 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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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철원제일교회 |
주소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금강산로 319 |
안내전화 |
033-455-5294 |
입장료 |
무료 |
철원제일교회는 노동당사에서 약 600미터 떨어져 있어서 노동당사와 함께 방문하기에 좋은 곳이다.
철원제일교회는 1936년 기공하여 1937년에 완공된 석조건물이었다. 미국인 윌리엄 머릴 보리스가 설계하였으며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교회였다.
6.25 전쟁 때에는 기독교 청년들이 이곳을 거점으로 반공 투쟁을 벌였다.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이 이곳을 막사와 병원으로 사용하였는데 이를 파악한 UN 연합군이 이곳을 폭격하여 교회 건물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2002년 5월 31일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되었다.
철원제일교회 옆에는 무너진 교회를 복원한 역사 전시실이 2013년에 건립되었다. 공산 치하에서 목숨을 걸고 신앙을 수호한 해방 전후 국내 기독교인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아로새겨진 뜻깊은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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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도피안사 |
주소 |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도피동길 23 |
안내전화 |
033-455-2471 |
입장료 |
무료 |
도피안사는 신라 경문왕 때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사찰 아래에는 비교적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일주문에 〈화개산 도피안사〉라는 현판이 달려 있다.
일주문을 지나자 말라버린 연잎이 가득한 연못과 애매하게 든 단풍나무들이 나타났다.
풍수지리의 대가인 도선국사는 철원 화개산(花開山)이 물 위에 뜬 연약한 연꽃의 형상이기에 사찰에 철불을 안치하고 3층 석탑을 세움으로써 산세의 약점을 보완하였다고 한다.
대적광전에서는 예불이 한창이었다.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국보 제63호의 귀중한 불상이다. 철불을 처음 보았을 때에 살짝 놀랐다. 불상의 얼굴이 오늘날 미남형 얼굴과 별반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내뿜는 신라 불상이나 후덕하고 친근한 느낌의 백제 불상과는 달리 도피안사 철불은 뭐랄까 잘생긴 청년을 연상시켰다.
도피안사 삼층석탑
보물 제223호이다. 도선국사가 경문왕 5년에 세웠다고 전해진다. 신라의 석탑은 언제 보아도 매혹적이다.
사찰에서 내려오는 길에 색이 바란 수국 군락이 눈에 띄었다. 군락은 크지 않았지만 여름 한때에 사찰을 찾는 이들의 눈길을 끌었을 법했다. 일주문 옆 낙엽 사이에 피어난 두 송이의 야생화가 스산한 가을 풍경에 한줄기 따스함을 더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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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학저수지 |
주소 |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오덕리 |
안내전화 |
033-450-5151 (철원군 관광안내과) |
입장료 |
무료 |
자동차로 학저수지를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주차장이 따로 없는지 내비게이션은 학저수지가 시야에 들어오자 2차선 도로 위에서 안내를 종료했다. 한참을 헤매다가 차 한두 대 세울 만한 공간을 간신히 찾아 주차하였다.
주차한 곳이 운 좋게도 학저수지 둘레길 시작점이었다. 안내도를 기준으로 둘레길이 좌우로 갈라져 있었다. 나무데크로 만들어진 좌측길로 향했다.
데크길은 저수지와 어울려 가을 정취가 그만이었지만 그리 길지 않다는 게 단점이었다. 데크길 끝에 다다른 후 둘레길 시작점으로 돌아갔다.
둘레길 출발점 우측길은 저수지와 갈대의 2019 Autumn 콜라보레이션이 한창이었다. 철원의 늦가을 세찬 바람에 몸을 내맡긴 채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들의 춤과 노래에 가슴에 쌓인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학저수지는 1921년에 조성되었고 해방 후 중앙농지개량조합이 보수·확장한 인공저수지이다. 학저수지의 노을이 장관이어서 사진사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출사 포인트라고 한다. 산책을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꼭 들러볼 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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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고석정 꽃밭 |
주소 |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태봉로 1825 |
안내전화 |
033-450-5558 |
입장료 |
무료 |
매년 봄과 가을이 되면 우리나라는 온통 〈꽃 축제장〉으로 탈바꿈한다.
그동안 전국의 수많은 꽃 축제에 가본 터라 여행 일정에 〈고석정 꽃밭〉을 포함시키긴 했지만 별다른 기대는 없었다. 물론 오산이었다.
고석정 꽃밭은 고석정 국민관광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꽃밭에는 정문과 후문이 있었는데 고석정 국민관광지에서 이동하면 후문으로 입장하게 되었다.
후문에서 먹거리 주막까지의 길을 걷는 동안 늦가을 매서운 바람에 먼지가 휘날리고 이름 모를 잡초들이 파르르 떠는 광경에 마음이 스산했다.
조금 전 우울했던 마음은 꽃밭에 도착하자마자 말끔히 사라졌다. 드넓은 평원을 가득 채운 다양한 꽃들이 가을바람에 한들한들 춤추는 광경은 압도적이었다. 고석정 꽃밭 여기저기에 배치된 인형들은 작위적이지 않아 친숙하고 자연스러웠다.
가우라(Gaura) 군락지
원산지는 북아메리카, 개화기는 6월에서 10월, 꽃말은 〈섹시한 여인〉이다. 일명 〈정원의 꽃〉이라고 불리며 흰색 꽃은 백접초, 붉은색 꽃은 홍접초라고 한다. 바늘꽃·나비바늘꽃이라고 불린다.
압도적인 스케일의 천일홍 군락지. 한 송이의 천일홍은 보잘 것 없을지 모르지만 무리지어 핀 천일홍 군락은 장미나 백합과는 다른 매력을 풍겼다.
고석정 꽃밭을 나누는 〈호박터널〉의 지붕에는 호박과 잎사귀들이 늘어져 있었다. 호박이 지붕을 가득 뒤덮었을 때의 호박터널이 궁금했다.
예전에 다른 꽃 축제에서 처음 보고 그 오묘한 색상에 반했던 〈코키아〉도 있었다. 몇몇 코키아에 달아놓은 센스 넘치는 장식이 오가는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코키아는 푸른색에서 붉은색으로 변모한 후 색이 바래가고 있었다. 붉은색 절정기의 코키아를 보지 못해 안타까웠지만 코키아 너머로 보이는 백일홍이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었다.
발길을 돌려 전망대로 가다가 마주친 천일홍 오드리핑크. 귀엽고 풋풋한 10대 소녀를 닮았다.
전망대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꽃밭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전망대의 어린 왕자와 붉은 여우 인형이 인상적이었다. 전망대 아래에는 자작나무 오두막도 있었다.
핑크뮬리 군락지는 그 자체만으로 웬만한 꽃 축제장보다 더 컸다. 핑크뮬리 군락지 안에서 서로의 사진을 찍는 두 여인의 모습이 핑크뮬리만큼이나 상큼했다.
〈주먹돌 길〉은 돌을 밟을 때의 달그락 소리가 듣기 좋았다. 낭만이 넘치는 길이었지만 걷기에는 그다지 편하지 않았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인생의 원칙을 고석정 꽃밭에서 되새기게 될 줄이야.
고석정 꽃밭은 생각보다 넓어서 체력적 소모가 컸지만 다양한 꽃, 방대한 규모, 짜임새 있는 구성이 돋보였다. 내년 봄에는 유채꽃·청보리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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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박정희장군전역공원 |
주소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삼부연로 51 |
안내전화 |
033-450-5228 |
입장료 |
무료 |
1963년 8월 30일에 거행된 박정희 장군의 전역식을 기념하여 1969년 8월 30일에 전역비를 세우고 1976년에 전역비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했다고 한다.
공원은 매우 넓고 쾌적했다. 잔디밭에서는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게이트볼을 즐기고 계셨다. 한가롭고 여유로운 정경이었다.
박정희 장군 전역비와 박정희 장군 동상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서체는 웅혼하고 담백하다.
우리나라의 부흥을 이끈 박정희 대통령이 이곳에서 전역식을 가졌다는 사실을 이날 처음 알게 되었다. 벤치에 앉아 박정희장군전역공원에 살포시 내려앉은 가을 정취를 잠시 감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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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삼부연폭포 |
주소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 |
안내전화 |
033-450-5151 (철원군 관광안내과) |
입장료 |
무료 |
철원 8경 중 하나인 삼부연 폭포는 명성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궁예가 철원을 도읍으로 삼았을 때에 폭포 아래 소(沼)에 살던 이무기 세 마리가 폭포의 바위를 뚫고 승천했다고 한다. 이때에 생긴 바위 구덩이 세 개가 가마솥(釜)과 닮았다고 하여 〈삼부연(三釜淵)〉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천 년의 기간 동안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삼부연 폭포의 물은 마른 적이 없다고 한다. 폭포는 20m 높이에서 세 번 꺾여 떨어지는데, 폭포수로 만들어진 물구덩이 세 개는 위에서부터 노귀탕·솥탕·가마탕으로 불린다.
폭포는 전망대에서도 볼 수 있지만 폭포 아래로 내려가는 철제 계단도 마련되어 있었다. 폭포를 가까이에서 보고자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폭포 아래의 소(沼)는 꽤 깊은 듯 검푸른 빛이었지만 그곳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맑고 투명했다. 폭포 옆 바위산에 드문드문 박힌 나무들이 폭포의 세찬 물소리와 잘 어울렸다.
삼부연 폭포를 마지막으로 철원 당일여행을 마무리하였다. 다소 빡빡한 일정에 피곤하기도 했지만 철원의 숨겨진 매력을 한껏 만끽할 수 있었던 기분 좋은 하루였다. 삼부연 폭포를 뒤로 하면서 이미 나는 다음 번 철원 여행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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