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던 11월 초순의 주말.
맑은 하늘, 잔잔한 바람, 선선한 기온. 집에만 있기에는 아까운 날씨였다.
늦가을 안산자락길의 메타세쿼이아 숲을 강추한 블로그를 보고 지체 없이 출발.
대중교통으로 안산자락길까지 가려면 버스와 지하철을 여러 번 환승해야 했다.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大우한폐렴시대에 장시간의 대중교통 이용은 부담이 컸다.
인터넷에 안산자락길 후기는 많았는데, 인근 주차장이나 자락길 입구에 대한 정보는 드물었다.
「서대문독립공원주차장」이 유일하게 네이버 지도에 표시된 안산자락길의 인근 주차장이었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주차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후기가 많았다. 가는 내내 일단 가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차장 입구에는 서너 대의 차량이 대기 중이었다. 다행히 빈자리가 내 차례까지 돌아와 주차 스트레스에서 해방.
▲ 일단 주차는 했지만 안산자락길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주차장 옆에는 잔디밭이 있었고, 잔디밭과 서대문형무소(로 보이는 곳) 사이에는 길이 하나 있었다. 그 길을 따라 걸었다. 가을이 차분히 내려앉은 잔디밭에서는 몇몇 가족들이 한가로운 오후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서대문형무소에는 관람객이 꽤 많았다.
▲ 길을 계속 걸어 올라가면 오른쪽에 배드민턴장이 있었고, 거길 지나쳐 더 올라가니 막다른 길이 나왔다. 그곳에서 좌측으로 돌아 서대문형무소의 붉은 벽돌 담장을 왼쪽에 끼고 쭉 걸었다.
▲ 담장 길 끄트머리에 다다르자 투명할 정도로 노랗게 빛나는 은행나무 서너 그루가 나타났다. 메타세쿼이아 숲에 다녀온 후에 찬찬히 사진에 담을 생각이었는데, 다녀오니 해가 약간 저물어 지금의 환상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이날 여행의 가장 큰 mistake.
▲ 은행나무 옆에는 「이진아기념도서관」이 있다. 도서관에 사람 이름을 붙였으니 뭔가 사연이 있는 도서관인 듯.
▲ 도서관에 이르자 「안산자락길」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초입은 상당한 급경사였다. 일반 길과 계단이 혼재되어 있다.
▲ 계단을 오르면 작은 휴게공간과 함께 이정표가 있다. 아무리 찾아봐도 메타세쿼이아 숲 표지판은 보이지 않았다.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중년 부부가 있어 물었다.
그들은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메타세쿼이아 숲은 현 위치에서 정반대에 있으며 한 시간 반 정도는 걸릴 거라고 알려주었다. 안산자락길은 순환로이므로 현 위치에서 왼쪽·오른쪽 어느 방향으로 가도 메타세쿼이아 숲에 갈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곳에 온 가장 큰 이유가 메타세쿼이아 숲이었고, 그 부부가 소요 시간을 다소 과장했다고 생각하여, 메타세쿼이아 숲에 갔다 오기로 결정.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大실수」였음.
▲ 중년 부부와 헤어진 후 안산자락길에 진입. 산책로는 여느 관광지처럼 목재데크로 만들어져 있는데 폭이 좁았다. 성인 두 명이 나란히 서면 꽉 찰 정도의 넓이였는데, 간혹 둘이 나란히 걷는 사람들 때문에 불편할 때가 많았다.
폭이 좁은 산책로의 맞은편에서 사람이 오면 잠시 한 줄로 비켜서는 센스를 기대하는 건 무리였을까. 둘이 나란히 걸어가면서 어깨빵을 하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이런 것도 교육이 필요한 일인가 싶었다.
▲ 「휠체어 및 유모차도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된 무장애 길」이라는 설명. 실제로 걸어보면 터무니없는 말이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완만하긴 하지만 오르막길이 상당히 이어지며 군데군데 경사가 꽤 되는 구간도 있다. 유모차를 끌고 온 용감한(?) 부부도 몇 쌍 봤는데 표정이 밝지 않았다.
▲ 중년 부부와 헤어진 후 5분 정도 걷자 서대문형무소와 인근 지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서대문형무소를 둘러싼 나무들의 단풍이 참 곱고 다채로웠다. 올해 단풍 시기가 예년보다 한참 늦긴 했지만 11월에 서울에서 단풍을 볼 수 있다니…. 현 위치에서 바라본 인왕산의 가을 풍경도 압권이었다.
▲ 안산 정상 봉수대로 올라가는 계단. 올라가 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메타세쿼이아 숲에 다녀오려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아래에서 바라보니 봉수대에 올라선 두 명의 실루엣이 보였다. 높이를 보고 안 올라가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 북카페쉼터를 지나면 화장실이 있다. 산책로가 길기 때문일까, 화장실 이용객이 상당히 많았다.
▲ 화장실을 지나면 「자락길 전망대」가 나온다. 북한산·인왕산·한양도성이 한눈에 들어와서 전망대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전망대에서의 풍경에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출발점에서 여기까지 꽤 걸어왔는데 지도를 보니 메타세콰이아 숲까지 갈 길이 멀었다. 쎄한 느낌이 들었지만 메타세콰이아 숲으로 다시 출발. 이때 멈췄어야 했음.
▲ 산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암석과 너와집쉼터 화장실.
▲ 오르막길에서 내리막길로 바뀌는 지점. 내리막길을 걸으며 행복했지만 나중에 도로 올라갈 생각을 하니 한편으로는 갑갑한 마음.
▲ 좁은 산책로가 끝나면 「느티나무 길」이라고도 불리는 널찍한 포장도로가 시작된다. 메타세쿼이아 숲이 멀지 않았다는 근거 없는 희망에 발걸음이 빨라졌지만 20여 분 더 걸어야 했음.
▲ 「숲속무대」라는 표지판이 보이면 메타세쿼이아 숲이 가까워졌다는 뜻. 산책로 초반부는 독일 가문비 숲이다.
▲ 메타세쿼이아 길 화장실. 높고 굵은 메타세쿼이아 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황금색 침엽들의 향연이 펼쳐지려는 순간...
▲ 이게 뭥미? 날씬한 메타세쿼이아 나무, 푸르른 나뭇잎. 예상과 다른 풍경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이걸 보려고 한 시간 반 넘게 걸어온 게 아닌데….
▲ 메타세쿼이아 숲 쉼터. 삼삼오오 앉아서 음식을 먹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많았다.
왔던 길을 되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왔던 길을 뒤로 하고 앞으로 계속 나아갈 것인가. 구간별 거리를 합산해 보니, 왔던 길이 오지 않았던 길보다 더 짧았다. 돌아갈 생각을 하니 암담했다.
▲ 조금 전에 지나왔던 느티나무 길. 출발지에서 메타세쿼이아 숲이 생각했던 것보다 먼 거리였고, 산책로도 경사가 있는 데다가, 기대했던 메타쉐쿼이아 숲의 황금 물결을 보지 못했다는 실망감이 겹쳐 돌아가는 길은 힘들고 지루했다. 걷는 내내 출발점에서 만났던 중년 부부의 충고가 생각났다.
🔊🔊🔊
1. 기대가 너무 커서 실망이 컸음
2. 잘 정비된 산책로이지만 쉽게 보진 말 것
3. 초행길에서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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