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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맛집

음성 무극전적국민관광지(2019.06): 6.25 최초의 승전보를 울려라!

by AOC 2019.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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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여행 중에 가야 할 곳 제1순위가 「무극전적국민관광지」였다. 여기는 6.25 남침 발발 후 국군이 최초로 승리한 감우재 · 무극리 전투를 기념하는 곳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 인민군이 기습 남침하여 개전 4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모든 전선에 걸쳐 패배와 혼란이 이어지고 있을 때에 음성군 감우재 일대에서 국군 1사단 11연대와 6사단 7연대가 5일 동안 격전을 벌여 인민군을 격파하였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인민군이 허둥대는 동안 국군은 낙동강 방어선 구축에 필요한 시간적 여유를 확보함으로써 대반격의 토대를 세울 수 있었다.

 

 

 

 

감우재전승기념관 인근에는 월남참전기념탑과 경장갑차가 있었다. 휴관일(매주 월요일)이라 기념관은 둘러보지 못했다.

 

 

 

 

 

기념관과 장갑차 사잇길로 올라가니 충혼탑과 충혼각이 있었다. 충혼탑으로 이어지는 길과 충혼탑 일대는 정갈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충혼탑에서 전승기념관으로 내려가는 언덕길에는 「음성 타임캡슐 2000」과 「음성 감우재 전승비」가 있었다.

 

 

 

 

 

전투에서 승리한 국군의 드높은 기상을 표현한 전승비의 역동적 형상이 인상적이었다.

 

 

 

 

 

감우재 전투에는 슬픈 뒷이야기도 존재한다. 국군으로부터 불의의 일격을 당한 인민군 패잔병들은 마을 사람들이 거짓 정보를 알려주어 자신들이 패했다며 마을 사람들을 학살하였다.

 

 

몇 년 전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을 다녀온 부부의 글을 읽고 마음이 답답해졌다.

 

 

 

 

남편은 어릴 때에 들었던 구호 「때려잡자, 김일성! 쳐부수자, 공산당!」이 험악한 표현이라고 한다. 그러한 구호는 우리와 피를 나눈 한 민족이자 한 형제인 북한에 대한 부정적이고 그릇된 교육의 결과라고 한다. 그러나 전쟁은 아픈 것이라고 한다. 생뚱맞은 의식의 흐름이었지만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었다.

 

 

 

 

어이없었던 것은 기념관 안에서 부부가 아이와 나눈 대화 때문이었다. 감우재 전투를 재현한 디오라마를 본 아이가 숨어 있는 사람들이 나쁜 사람이냐고 묻자 아내는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은 없고 다 같은 형제인데 가슴 아프게 싸운 거라고 대답했단다.

 

 

여기가 어디인가? 병력과 장비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국가 수호를 위해 장렬히 싸우다가 전사한 71명의 국군을 추념하는 곳이다. 도망가던 인민군들이 마을 사람들을 학살한 아픔이 아로새겨진 곳이다. 그분들이 「형제」와 싸우다가 가슴 아프게 죽었다고 말하는 게 올바른 것인가, 우리나라를 침공한 「적」과 맞서 싸우다가 산화하셨다고 말하는 게 올바른 것인가?

 

남편은 어느 전쟁이든 이기고 지는 것은 무의미하단다.

 

아아, 그렇구나. 6.25 전쟁에서 이긴 게 무의미한 거구나. 전쟁에서 졌어도 별로 상관 없었던 거였구나. 아이들이 화합하고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단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민족」이니까.

 

아아, 그렇구나. 한민족은 서로 싸우지 말아야 하는 거구나. 아파트 윗층의 층간소음도 참아야 하는 거구나. 아파트 윗층 주민은 「한민족」이니까. 자기 아이를 때리고 왕따시킨 같은 반 친구도 조건 없이 용서해야 하는 거구나. 그 아이도 「한민족」이니까.

 

 

젊은 나이에 스러져간 호국영령들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은 쉽게 가시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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