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남 테마공원에서 설성공원은 자동차로 약 15분 거리이다. 원남 테마공원 둘레길을 한참 걸어서인지 살짝 피로했다. 설성공원을 건너뛰고 미타사로 직행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어차피 미타사로 가는 길이고 규모가 작아 금방 둘러볼 수 있을 거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설성공원에 도착했지만 주차장을 찾을 수 없어서 공원 옆 도로에 주차하였다. 해가 중천에 떠 햇살이 따가웠지만 도로변 나무들이 드리운 그림자 덕분에 공원을 돌아보는 동안 자동차의 열을 식힐 수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공원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아담했다. 공원 가운데의 연못 주위로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었고 연못 중앙의 섬에는 정자·탑·비석 등이 있었다. 둘레길과 섬을 잇는 작은 석조 다리도 두 개 있었다.
섬으로 가기 전에 둘레길을 걸어 보기로 했다. 둘레길 벤치에 앉아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는 어르신들이 눈에 띄었다. 검푸른 물빛으로 미루어 연못의 수심은 깊어 보였다. 연못에는 거대한 잉어들이 가득했다.
외딴 벤치에 홀로 앉아 독서 중인 아가씨가 눈에 띄었다. 풍경 사진만 남길 순 없어서 인물 사진의 모델이 되어 줄 수 있는지 물어 보려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인부들이 공원 보수 작업을 시작했다. 아가씨는 소음에 짜증이 난 듯 미간을 찌푸리며 벤치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날 여행 내내 인물 사진은 한 장도 찍지 못했다.
공원은 아담했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 공원의 모습이 팔색조처럼 바뀌었다. 둘레길 한편에는 체력단련기구들도 설치되어 있었다. 기구 대부분이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공원 이곳저곳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어디선가 「정말 좋죠?」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초로(初老)의 아주머니가 미소를 띤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공원이 정말 좋네요 하고 대답하자 아주머니는 저쪽의 「선인장」도 찍어 주세요 하며 자리를 떠났다. 공원 어딘가에 화단이 있나보다 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공원 옆 야외 공연장에 놓인 「위안부 소녀상」이 보였다. 아주머니가 말한 선인장이 소녀상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소녀상 사진은 찍지 않았다.
체력단련기구를 지나자 등나무로 뒤덮인 쉼터가 있었다. 등나무꽃이 피는 5월에 일대 장관을 이루었을 것이다. 배가 고프고 목이 말랐다. 쉼터에 앉아 도로 건너편을 보니 GS25 편의점이 있었다.
둘레길 출발점으로 돌아온 후 다리를 건너 섬으로 들어갔다. 둘레길에서 본 정자는 「경호정」이었다. 1934년에 「인풍정(仁風亭)」이라는 명칭으로 창건되었다가 1997년에 중건되었다. 인풍정에서 경호정으로 이름이 바뀐 시기와 연유는 알 수 없었다. 경호정에 올랐지만 섬의 지대가 높지 않아 정자 아래에서 보는 경치와 정자 위에서 보는 경치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호정 맞은편에는 충북유형문화재 제129호 「음성 읍내리 삼층석탑」이 있었다. 본래 음성읍 평곡리 탑정이의 옛 절터에 있었는데 1934년에 인풍정을 세울 때에 이리로 옮겼다고 한다. 건립 연대는 고려 중기로 추정되며 상륜부는 없어진 상태이다.
매년 5월 「음성품바축제」가 개최되는 야외 공연장에도 가보려 했지만, 허기와 갈증과 피로가 내 발을 잡아당겼다. 등나무 쉼터에서 보아둔 GS25에서 라면 · 빵 · 우유로 배를 채웠다. 천 원을 손에 꼭 쥐고 두 개의 과자 앞에서 고민하는 꼬마 숙녀를 뒤로 한 채 편의점을 나섰다. 편의점 옆에는 분위기 좋은 카페도 있었지만 촉박한 시간 때문에 아쉽게도 들어가 보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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