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맛집

진도 삼별초 궁녀 둠벙(2015.12): 차원이 다른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

by AOC 2016. 7. 28.
반응형

오래 전 전남 화순의 이름 모를 곳에서 이상한 경험을 했다.

 

해질 무렵 그곳에 이르자, 소름이 돋고 온몸의 감각세포가 동시에 반응했다.

 

-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

-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아무런 근거도 물증도 없었지만, 미지의 공포감에 사로잡혔던 유일한 경험이었다.

 

진도-관광명소-삼별초-궁녀둠벙-다크투어리즘

 

삼별초 궁녀 둠벙에서 미지의 공포를 "다시" 경험했다.

 

 

 

 

삼별초 궁녀 둠벙으로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에 등록되어 있지 않았고, 근처에 표지판도 없었으며, 진입로도 좁았다.

 

삼별초 궁녀 둠벙은 몽골군의 진도 침공 당시 비극적 사건이 벌어진 현장이다.

 

진도에 내려와 몽골과의 항쟁을 이어나간 삼별초는 승화후(承化候) 온(溫)을 왕으로 추대했다.

 

 

몽골군이 진도를 침공하자 삼별초가 맞서 싸웠지만 대적하기에 힘이 부쳤다. 궁궐이었던 용장산성이 함락되었다.

 

삼별초는 제주도에서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 온(溫)과 함께 지금의 의신면 남쪽 해안으로 퇴각하였으나, 몽골군의 추격은 맹렬했다.

 

 

 

 

몽골군은 현재의 의신면 남산 자락에서 삼별초와 궁인(宮人)들을 덮쳤다. 고려 수도 개경에서 멀리 떨어진 진도의 산골짜기에서 아비규환이 벌어졌다.

 

삼별초의 수장이었던 배중손은 임회 방면으로 도망쳐 남도석성에서 농성하다가 전사하였다.

 

또 다른 수장이었던 김통정은 의신면 금갑리 방면으로 도망친 후 배를 타고 제주도로 건너가 2년여간 항몽 전쟁을 펴다가 죽임을 당했다.

 

남산 자락에서 벌어진 유혈참극. 승화후(承化候) 온(溫)의 당시 행적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왕답게 분연히 떨쳐 일어나 몽골군에 맞서 전투에 임했을까.

 

삼별초에 의해 왕으로 억지 추대되었음을 후회하며 눈물을 흘렸을까.

 

확실한 사실은 몽골군에 의해 자신의 아들 항(恒)과 함께 사로잡혔다는 것이다.

 

몽골군과 연합했던 고려군은 온(溫)과 항(恒)을 개경으로 데려갈 것을 주장했지만, 몽골군 수장 홍다구(洪茶丘)는 온(溫)과 항(恒)을 기어이 참살했다.

 

온(溫)이 죽은 곳은 왕이 죽은 곳이라 하여 오늘날까지 「왕무덤재」로 불린다.

 

 

 

 

궁인(宮人)들의 운명은 어떠했을까.

 

창에 찔리고 칼에 베이고 화살에 맞아 죽은 환관.

 

몽골군에게 사로잡혀 겁탈당한 후 칼에 베인 궁녀.

 

골짜기 좌측의 남산과 골짜기 우측의 첨찰산 자락으로 달아난 궁인들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 곳 모두 200여 미터 남짓한 높이였으니 몽골군에게 사로잡힌 이가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이 와중에 전장戰場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일단의 궁녀들이 현재의 진도군 의신면 만길리로 가다가 만길재에 이르렀다.

 

몽골군의 추격은 거셌고 달아날 힘은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여기(女妓)·급창(及唱) 등의 궁녀들은 몽골군에게 붙잡혀 치욕을 당하느니 죽음을 택하고자 했다. 그들은 언덕을 내려가 현재의 웅덩이에 몸을 던져 자결하였다. 「둠벙」은 「웅덩이」를 뜻하는 전라도 사투리다.

 

이것이 「삼별초 궁녀 둠벙」에 얽힌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그 후로 비가 오는 날에는 이곳 둠벙에서 여인네들이 슬피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또한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밤에는 이곳 둠벙 근처를 지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곳 둠벙이 어찌나 깊은지 절구를 던져 넣으면 금갑리 앞바다로 나온다는 전설도 전해져 내려온다.

 

 

 

 

우리나라의 역사가 긴 만큼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곳도 많다. 그러한 장소를 둘러볼 때면 당시의 참상을 상상해 보거나 비참한 최후를 맞은 이들을 애도하곤 했다.

 

삼별초 궁녀 둠벙에서는 그런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다. 전남 화순 이름 모를 곳에서 감지했던 섬뜩함, 그것을 이곳에서도 느꼈다.

 

둠벙에 가까이 다가가면 안 될 것 같았다. 포스팅의 모든 사진은 둠벙 물가에서 네댓 걸음 떨어진 곳에서 찍은 것이다.

 

 

 

 

웅덩이 옆 바위에는 새로 지어진 정자가 있었는데 감히 올라갈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정자 너머에는 집이 있었다.

 

이 지역 사람들도 밤이나 비 오는 날에는 이곳 웅덩이를 피한다던데 웅덩이가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에 사는 사람은 누구일까.

 

자세히 살펴보니 짓다가 만 것인지 살다가 비워진 것인지 확실치는 않았지만 "빈집"이었다.

 


1. 몽골군을 피해 궁녀들이 뛰어들어 자결한 웅덩이

2. 비 오는 날이나 밤이면 여인네들의 슬픈 울음 소리가…

3. 슬프고도 섬뜩한 전설의 현장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