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2% 부족한 안내 시스템으로 이토록 훌륭한 산책길을 망치는 이유를.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은 동해면·호미곶·장기면의 해안선 58㎞를 연결하는 해안 산책로이며 네 개의 코스로 구성된다. 포항시청 웹사이트에 둘레길 지도와 설명이 있는데 초행자의 시각으로 조금만 더 고민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동차로 갈 경우 각 코스별 시작점과 종착점을 찾기가 어렵고 주차시설에 대한 설명이 없다. 네 개의 코스 중 가장 인기가 많은 2코스의 경우 안내지도에는 시작점이 "입암2리 마을"이라고만 되어 있다. 일단 마을에 가서 찾아보던가 주민에게 물어보란 뜻인가. 주차시설 유무여부도 확인할 방법이 당최 없다.
코스별 길이와 소요시간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에서 하루를 몽땅 보낼 여행자가 아니라면, 네 개의 코스 중 하나 또는 두 개를 선택할 공산이 큰데, 각 코스의 시간·거리 정보가 없으니 여행계획을 짜기가 난감하다.
코스를 순환하는 셔틀버스를 운행하는 아이디어는 높이 평가한다. 그런데 정류소의 주소와 버스시간표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1코스의 청림운동장은 작은 곳인가? 운동장에만 가면 정류소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건가? 4코스 호미곶광장의 정류소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가? 배차시간은 잦은가 드문가?
다른 블로그의 후기를 보아도 둘레길에 대한 칭찬이나 묘사만 있을 뿐 위에 언급한 궁금증에 대한 설명은 찾기 어려웠다.
포항시청 웹사이트에는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2코스의 시작점이 입암2리로 되어 있지만 내비게이션에 계림횟집(계림회집)을 입력하는 게 확실하다. 계림횟집의 주소는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동해면 입암리 395다.
계림횟집 맞은편에는 빨간 고래가 그려진 시멘트 벽, 선바우길 coffee라는 가건물, 십여 대의 자동차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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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는 표지판이 있다.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 방향에는 계림횟집에서 테마공원까지의 거리(2.1㎞)가, 하선대 선바우길 방향에는 계림횟집에서 하선대 선바우길 시작점까지의 거리(0.1㎞)가 표시되어 있다. 계림횟집에서 하선대 선바우길 종료점까지의 거리가 여행자에게 더 유용하고 합리적인 정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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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점에는 아담하고 깨끗한 화장실이 있다.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의 시작점은 선바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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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바우
약 6m의 바위. 이 마을을 개척한 평택 임씨 사람들은 선바우를 한자로 표기한 입암(立岩)으로 마을 이름을 삼았다. 전형적 화산활동 지형의 백토(벤토나이트 성분)가 드러난 바위로서, 벼락을 맞아 형태가 변형되고 크기가 작아졌다.
해안둘레길에 접어들자 이곳에 찾아오기 전까지 쌓인 온갖 스트레스가 말끔히 사라졌다. 호미곶 상생의 손 바닷가와 마찬가지로, 해안은 모래가 거의 없고 암반과 큰 돌 위주라 바닷물이 심산유곡의 약수처럼 맑았다. 바다에는 갈매기와 파도가 어울려 춤추고 그 너머로 포항제철이 아스라이 보였다. 바닷바람이 세찼지만 걷는 데에 지장을 주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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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 굽이를 돌 때마다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나타나고 사라졌다. 대부분의 바위들은 처음 보는 재질이었는데 시멘트와 자갈을 뒤섞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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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김새가 독특한 바위에는 여지없이 억지스럽지만 실소를 자아내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남근바위 - 소원바위1 - 안중근의사 손바닥바위 - 킹콩바위 - 소원바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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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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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디기
노(盧)씨 사람들이 이곳에 처음 정착하였을 때에 가문이 흥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흥덕(興德)이라 하였다. 이후 음이 변하여 힌디기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흥덕→힌덕→힌디기).
다른 설에 의하면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지형인 호미반도에는 화산성분의 백토(白土)로 형성된 흰 바위가 많아 흰 언덕 또는 흰덕으로 불렸고 이후 흰덕에서 힌디기로 지명이 불리게 되었다.
힌디기에서 데크 산책로가 끝나고 해변으로 이어진다. 해변으로 내려서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강아지가 주위를 맴돌았다. 생김새나 행동이 귀여워서 먹을 것을 주려고 주머니를 급히 뒤져봤지만 줄 만한 것이 없었다. 처음에는 유기견이라고 생각했는데 산책로를 여유롭게 쏘다니는 품을 보니 동네 강아지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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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밭 해안을 걸어 거대한 암반 위의 산책로에 올라섰다. 얕은 물 아래의 암반은 넓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산책로를 백여 미터 걸어가자 하선대 안내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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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선대
동해면 입암리와 마산리 경계지점인 황옥포(黃玉浦, 속칭 한미끼)에 있는 널찍한 바위섬으로서 선녀가 내려와서 놀았다고 하여 "하선대" 또는 "하잇돌"이라고 한다.
동해 용왕이 매년 칠석날 선녀들을 이곳으로 초청하여 춤과 노래를 즐겼는데, 유독 미색이 뛰어나고 마음이 고운 선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용왕은 그 선녀를 왕비로 삼게 해달라고 옥황상제에게 간청하였으나 단박에 거절당했다.
용왕은 황제의 마음을 얻기 위해 바다를 잠재우고 태풍을 없애는 등 인간을 위해 선정을 베풀었다. 용왕의 노력에 감복한 옥황상제는 용왕과 그 선녀의 혼인을 허락하였고 둘은 이곳으로 와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산책로에서 내려다보면 하선대는 바위섬이라기보다는 해변의 암반지대인 것 같은데, 길이가 100~200m는 되어 보임직했다. 옛사람들이 옥황상제·동해용왕·선녀를 끌어다 붙여 전설을 만들 법했다.
하선대에 이르러 산책로는 다시 끝나고 해변이 이어졌다. 하선대에서 돌아갈까하다가 해변 너머의 마을까지 다녀오자 마음먹었는데 탁월한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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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 너머의 마을은 "마산리"다. 마산리쪽 해변에 큼지막한 바위 두 개가 서 있었다. 이걸 보지 못하고 갔더라면 아쉬움이 클 뻔했다. 연오랑세오녀 설화에서 연오와 세오를 태우고 일본으로 건너간 먹바위다. 생김새가 모자를 쓴 강아지같기도 하고 인도신화의 가루다같기도 하고 고성능 모터보트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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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리는 자그마한 방파제에 말없이 묶여있는 여러 척의 배들만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릴 뿐 인적이 드물었다. 햇볕이 잘 드는 방파제 위에는 청각(해조류의 일종)이 말려지고 있었다. 포항시청 웹사이트 지도의 2코스 종착점은 흥환해수욕장 부근이지만 산책을 마무리하고 원점(계림횟집)으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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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가 드러난 소나무, 여왕바위, 폭포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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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반도 해안둘레길로 오는 과정은 힘들고 짜증스러웠지만, 쾌적함과 주변경관만 놓고 본다면 지금껏 다녀본 둘레길 중 상위 수준이었다. 코스 안내만 조금 더 체계적으로 정비한다면 국내에서 손꼽히는 산책로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P.S. 이곳을 다녀간 바로 다음 날, 포항에 진도 5.4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이 일어날 무렵,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에 있었을 사람들의 공포감은 대단했을 것이다.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2코스 요약
○ 시작점: 계림횟집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동해면 입암리 395)
○ 주차장: 있음 (약 10여대)
○ 소요시간: 왕복 1시간 (선바우 → 먹바위 → 선바우)
○ 난이도: 매우 쉬움 (오르막길·내리막길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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