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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맛집

양양 하조대(2017.10): 비극(悲劇)으로 물든 절경

by AOC 2017.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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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정에서 하조대까지는 8㎞이며 자동차로 10분 거리다. 10월 중순의 동해안은 서늘한 바닷바람과 따가운 햇빛이 뒤섞여서, 점퍼를 벗으면 쌀쌀하고 점퍼를 입으면 더웠다. 양양8경 중 5경인 하조대에는 세 가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1

하륜(河崙)과 조준(趙浚)은 고려 말의 혼란을 피해 강원도로 왔다가 이곳 경치에 반해 한동안 여기서 머무르며 국가의 미래를 논했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둘은 새 왕조에 힘을 보태고자 이곳을 떠나 도성으로 향했다. 두 사람의 성(하河·조趙)을 따서 이곳을 하조대라고 부른다.

 

#2

하조대가 있는 하광정리에 하씨 성을 가진 『훈남』이 있었다. 같은 마을에 조씨 성을 가진 자매가 있었는데 자매 둘이 동시에 그 훈남에 반하고 말았다. 자매 모두 훈남을 양보하지 않았고 훈남 또한 언니와 동생 모두에게 마음을 둔 상태였다. 세 남녀는 한 자리에 모여 최선의 방법을 찾았는데 그들의 결정은 최악이었다.

 

 

세상의 도덕적 기준에 맞추자면 훈남이 자매와 동시에 결혼할 수 없으니 차라리 함께 목숨을 끊어 저승에서 부부의 연을 맺기로 결의한 세 사람은 이곳 절벽에서 함께 뛰어내렸다. 하조대에는 해당화가 많은데 그 빛깔이 유난히 붉고 진하다. 세 남녀의 피와 한이 응어리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씨 훈남과 조씨 자매의 애달픈 사연을 기려 그들이 뛰어내린 절벽을 하조대라고 부른다.

 

#3

신라 시대 이 지방에는 하씨 가문과 조씨 가문이 있었는데 견원지간이었다. 하씨 가문의 하랑이라는 총각과 조씨 가문의 조당이라는 처녀가 불같은 사랑에 빠졌지만, 두 가문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쳐 암흑 같은 절망에 빠진 비운의 연인은 이곳 절벽에서 함께 뛰어내렸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으로 몬태규가(家)와 캐퓰릿가(家)는 구원(舊怨)을 풀고 화해하지만, 하랑과 조당의 죽음으로 하씨 가문과 조씨 가문의 반목이 그쳤다는 얘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두 가문의 어리석음을 후대에 경계하기 위해 가문의 성을 따 이곳을 하조대라고 부른다.

 

 

 

 

주차장은 하조대 가까이에 있다. 하조대 부근에는 군사시설이 많다. 주차장의 두 갈래 길 중에 왼쪽 길은 하조대로 오른쪽 길은 하조대 유격장으로 이어진다. 하조대를 보고 나니 이곳 유격장은 스릴이 넘치다 못해 터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대를 둘러본 후에 정자에 오르기로 하였다. 등대로 가는 길에 카페도 있다.

 

 

 

 

등대로 가는 길 위쪽은 군사시설이다. 출입가능시간도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소초장과 부소초장의 전화번호가 경고판에 적혀있는데 보안상 바람직하지 않다. 출입가능시간을 모르고 왔다가 잠긴 문을 열어 달라고 생떼를 부리는 관광객 때문에 그리 한 것 같은데 해안경비부대 지휘자의 개인 연락처를 노출시키는 건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등대에서는 한 쌍의 연인이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여자가 하조대 쪽으로 서서 포즈를 잡으면 남자가 연신 휴대폰의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이십여 장은 찍은 것 같은데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아 여자 옆으로 가서 하조대 방향을 카메라에 담았다. 연인의 추억쌓기를 방해하고 싶진 않았지만 둘의 알콩달콩함을 지켜주기 위해 여기서 마냥 지체할 수는 없었다.

 

 

 

 

하조대 반대편도 절경이었다. 등대 좌우 풍경에 홀렸는지 정작 등대 사진은 남기지 못했다.

 

 

 

 

남애항·휴휴암·죽도정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는데 세 곳보다 경치와 전망이 뛰어났다. 하조대는 등대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올라가지는 않았다. 시간적 여유는 얻었지만 하조대에서만 볼 수 있는 『애국송(愛國松)』 감상은 포기해야 했다.

 

■ 여행 시기: 2017년 10월 3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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