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맛집

거제 여차홍포전망대(2015.06): 유일무이한 지상낙원

by AOC 2016. 7. 10.
반응형

여차홍포 전망대를 알게 된 경위는 기억나지 않는다. 블로그, 신문 기사, 아니면 관광안내서에서 알게 되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어떻게 알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이곳을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마땅한 일이다.

 

여행 일정에 이곳을 집어넣을 때에도 별다른 기대 따위는 하지 않았다. "거제 8경(景)"이니 "다도해의 비경(秘境)"이라는 현란한 묘사에도 그리 설레지 않았다. 거제도 최남단 전망대에 대한 호기심이 여차홍포 전망대로 향하는 유일한 이유였기 때문이다.

 

 

일단 여차홍포 전망대로 가는 길을 찾는 게 문제였다.

 

이곳에 가려면 1018번 지방도를 타야 하는데 저구사거리에서 여차 마을을 경유하는 동쪽 루트와 저구사거리에서 홍포 마을을 경유하는 서쪽 루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포털 사이트 지도와 내비게이션이 지금은 이곳을 정상적으로 가리키지만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아예 검색되지 않거나 위치가 모호하게 표시되었다.

 

거제시청 관광과에 전화하였더니 내비게이션에 등록되어 있을 텐데 이상하다는 반응이었다. 관광과 직원의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초행자에게 전망대 가는 길은 여전히 알쏭달쏭했다. 전망대 가는 길은 비포장도로인데 홍포 마을보다는 여차 마을 쪽이 수월할 거라는 직원의 귀뜸은 매우 유용했다.

 

가조도 일주 후에 점심 겸 저녁을 마치고 여차 마을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여섯 시. 마을 입구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정다운 표정과 밝은 목소리로 전망대 가는 길을 알려 주셨다. 포근한 지세(地勢)에 어여쁜 인심(人心)이었다.

 

 

 

 

여차 마을 전망대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중턱이 삼각형 모양으로 깎여 나간 망산(望山)이 보였다. 산을 왜 저리 훼손했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여차홍포 전망대로 향하는 길이었다.

 

여차 마을에서 여차홍포 전망대로 가는 길은 관광과 직원이 알려준 그대로였다. 비포장이긴 해도 깊이 패인 곳 없이 잘 관리된 길은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어서 어둑어둑했다.

 

십여 분 주행하자 주차된 자동차와 여남은 사람들이 보였다. 조금 전 여차 마을 전망대에서 보았던 삼각형으로 절개된 망산 중턱이었다. 차를 세우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거제 8경(景)이니 다도해의 비경(秘境)이니 하는 진부한 표현으로 묘사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바라만 보아도 행복이 샘솟고 근심이 녹아내리는 풍경이 여기에 있었다.

 

섬과 바다가 융합하여 내뿜는 야릇한 기운에 바라보는 이의 영혼이 무장해제되는 풍경이 여기에 있었다.

 

남해(南海)의 격류(激流) 속에서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소리 높여 노래하는 섬들의 몽환적인 풍경이 여기에 있었다.

 

"말로 형언할 수 없다"라는 Cliché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풍경이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붉고 강렬하며 원색적인 서해의 일몰과는 달리, 여차 마을 앞바다의 일몰은 곱고 몽롱하며 부드럽다.

 

보는 이의 마음을 슬프게도 하고 기쁘게도 하며 차분하게 만들면서도 벅차오르게 한다.

 

해질 무렵 여차 마을의 하늘과 육지와 바다와 섬들은 노스탤지어(nostalgia)의 원형을 드러낸다.

 

 

 

 

여차홍포 전망대의 여차와 홍포가 의미하는 바가 비로소 명확해졌다.

 

 

 

 

"여차(汝次)"는 마을 앞바다 여덟 개의 섬이 마을을 바라보고 지킨다는 뜻이다. 탁월한 작명(作名)이다.

 

 

 

 

"홍포(紅浦)"는 노을이 지면 무지개를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무지개는 하늘에도 드리우고 바라보는 이의 마음에도 드리운다.

 

 

 

 

어둡기 전에 숙소로 돌아가야 했지만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배 한 척이 다가오고 있었다. 배가 망산 아래를 지나가면 떠나겠다고 마음먹었다.

 

 

 

 

배가 망산 아래를 지나갔다. 배가 일으킨 물결마저 보는 이의 심금을 울렸다. 문득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은 푸른 색도 아니고 붉은 색도 아니며 노란 색도 아니었다. 두루뭉술한 하늘빛을 뒤로 한 채 떠나는 건 옳지 않았다. 노을이 분명해지면 떠나겠다고 마음먹었다.

 

 

 

 

한동안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뭔가 이상했다. 여차홍포 전망대라고 하기에 이곳은 너무나도 빈약했다.

 

왔던 길로 돌아갈 것인지 산 아래 길로 내려갈지 고민하고 있는데 조금 전 산 아래 길로 내려간 자동차가 되돌아 올라왔다.

 

길 아래 쪽에 뭔가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도로를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니 2층 목조건물이 있었다. 여차홍포 전망대였다.

 

 

 

 

여차홍포 전망대는 병대도 전망대라고도 불린다. 주위가 갑자기 어두워졌다. 멧돼지가 튀어나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울창한 숲 속이라 조급해졌다.

 

 

 

 

전망대 2층에 오르니 보라색 노을에 물든 여차홍포의 환상적인 비경(秘境)이 펼쳐졌다.

 

 

 

 

천국이 지상에 있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

 

다음 행선지는 "거제 리베라 호텔"이었다.

2016/07/10 - [여행] - 거제 리베라 호텔(2015.06): Hot했던 Ocean View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