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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맛집

경주 양동마을 서백당(2017.11): 회재 이언적과 향나무

by AOC 2017.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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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전 경주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양동마을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야트막한 동산에 고택(故宅)들이 빼곡히 들어선 "그저 그런 마을"이 양동마을의 첫인상이었다. 향단(香壇)·무첨당(無忝堂)만 둘러보고 돌아왔던 걸로 기억한다. 양동마을에 대한 평범한 기억에도 불구하고, 여행 첫 목적지를 포항 호미곶에서 양동마을로 바꾼 것은 서백당(書百堂) 때문이었다.

 

 

 

 

안강IC에서 양동마을로 가는 길은 십여 년전과 비슷했지만 마을 입구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는 마을 안쪽까지 자동차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마을 입구에 별도로 마련된 주차장에 주차하고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해야 한다.

 

주차장은 넉넉하지만 바닥에 큰 돌들이 깔려있어 울퉁불퉁하다. 전통미를 구현한 것 같은데 아스팔트로 깔끔히 포장하는 게 좋겠다.

 

 

 

 

주차장 공터에는 양동마을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기념비가 있다. 기념비 옆 양동마을문화관에는 관리사무소, 매점, 카페 겸 식당이 있다.

 

 

 

 

양동마을문화관을 통과하면 매표소가 있다. 입장료는 저렴하지 않다. 시간을 잘 맞추면 해설사로부터 마을의 내력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매표소를 지나 조금 걸으니 한옥스타일의 거대한 건물이 보였다. 박물관이거나 기념관이라고 생각했는데 『양동초등학교』였다.

 

 

 

 

마을은 기억 속의 십여 년전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주요명소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서 서백당을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서백당은 비탈길 위에 있다. 이른 아침이라 아무도 없으려니 생각했는데 중국인 여자관광객 두 명이 대문에서 나왔다. 사랑채의 현판 서백당은 참을 인(忍)자를 백 번 쓰며 인내를 기른다는 뜻이다. 계단 위 태극 문양의 문 너머는 사당이다.

 

 

 

 

서백당에는 흥미로운 전설이 깃들어 있다.

 

 

경주 손씨 가에 서백당의 터를 잡아준 지관(地官)은 이곳에서 세 명의 큰 인물이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지관의 말대로 손소 공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우재 손중돈은 훌륭한 관료이자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다. 그 이후에 여주 이씨 가문으로 시집을 간 손씨 문중의 여인이 이곳에서 해산을 하였는데 그녀가 낳은 아이가 해동 18현이자 성리학의 대가인 회재 이언적이다.

 

 

해동 18현 (문묘 18현)

설총 · 최치원 · 안향 · 정몽주 · 김굉필 · 정여창 · 조광조 · 이언적 · 이황 · 김인후 · 이이 · 성혼 · 김장생 · 조헌 · 김집 · 송시열 · 송준길 · 박세채

 

 

 

이를 두고 경주 손씨 문중은 서백당에서 태어날 세 명의 현인 중 하나를 다른 가문에 빼앗겼다고 꽤 억울해 했다. 이언적 사건(?) 이후 다른 가문으로 시집 간 경주 손씨 여인들이 해산 달에 맞춰 서백당으로 오면, 경주 손씨 가문은 그녀들을 절대 서백당에 들이지 않고 마을의 다른 집이나 다른 마을로 보낸다고 한다. 서백당에서 태어날 마지막 현인은 반드시 경주 손씨여야 하기 때문이다.

 

 

 

 

서백당 마당에는 수령이 5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향나무가 있다. 거대하면서도 수형(樹形)이 기묘하고 안정적이다. 실제로 보면 나무의 위세가 대단하다.

 

 

 

 

서백당 비탈 아래 풍경

 

 

 

 

서백당에서 마을 입구로 되돌아가며 비로소 늦가을 양동마을의 풍경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백 년 넘게 영업 중인 양동점방 근처에서 중국인 단체관광객과 미국인 단체관광객들이 해설사의 설명에 귀기울이고 있었다. 매표소에서 서백당만 보고 오는 데에 50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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