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단산으로 산행을 다닌 지 몇 년 되었지만 산을 찾는 기간은 매년 4월 말부터 10월 말까지였다.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닌데 늘 그러했다. 며칠 전 구입한 윈드자켓을 걸쳐입고 처음으로 11월 첫 날 검단산으로 향했다.
지난 달 상강(霜降)에는 텅 비었던 주차장이 가득 차 있었다. 검단산을 바라보니 그럴 법도 했다. 가을빛이 완연한 검단산을 마주한 건 처음이었는데 늦가을 검단산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품위가 있었다. 산 정상에서 20% 정도 아래로 단풍이 내려와 있었는데, 단풍이 절정에 이르면 그 위세가 자못 대단할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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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는 자동차들이 가득했지만 정작 등산로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가을바람이 나무를 스치는 소리,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 떨어진 낙엽이 길에서 나뒹구는 소리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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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는 막걸리와 아이스크림을 파는 파라솔이 서 있었다. 술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스크림을 먹을 시기도 아니어서 검단산 주차장 입구에서 사온 청송 사과주스를 들이켰다. 정상의 시계(視界)는 좋지 않았지만 가을 분위기는 완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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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돌저수지 백일홍은 아직까지도 지지 않았다. 늦가을의 싸늘함에 다소 변색됐지만, 한창 때의 화려함을 여전히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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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산행 때처럼 까마귀들이 등산로 주위에 많이 모여있었다. 먹을거리가 부족해서 등산객들이 먹다 버린 음식 때문에 내려오는 건 아닌가 싶다. 까마귀 무리가 모여 울어대는데 그 소리가 『까악까악』이 아니라 『아악아악』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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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탑 앞의 벚나무. 벚나무가 장미과라는 건 처음 알았다. 요즘 현충탑 앞을 지날 때면 마음이 무겁다. 봄꽃의 아름다움을 즐길 새가 있었겠는가. 가을단풍을 감상할 여유가 있었겠는가. 한여름의 찌는 듯한 더위와 한겨울의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를 버텨가며 제 한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고 사라져 간 이들의 소망은 소박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이분들의 숭고한 노력에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선대(先代)의 얼과 희생을 평가절하하고, 심지어 북괴군에 맞서 맨주먹으로 맞선 분들을 『이 나라의 통일을 방해한 원수』라고 비난하거나 서울시 한복판에서 『나는 공산주의자』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러서는 분노마저 느낄 수 없다. 오늘따라 현충탑이 쓸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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