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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맛집

청송 주왕산(2023.10): 단풍철 주왕산에서의 추억 보정

by AOC 2023.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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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청송은 한번 가려면 정말 큰 마음을 먹고 가야하는 곳이었다.

 

당진영덕고속도로가 개통된 후에는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기에 고속도로 개통 이후 2년에 한 번 정도는 청송의 이곳저곳을 탐방 중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청송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주왕산은 아직 가보지 않았다.

 

 

 

 

주왕산은 아주 오래전 탐방한 적이 있었다. 흑백사진처럼 단편적인 기억만이 남아 있을 정도로 지금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일이다.

 

아담하고 조용한 절.

 

회색빛의 거대한 기암괴석들.

 

깊게 패인 계곡 사이에 놓인 철망 탐방로.

 

주왕산 근처 국도변에서 구입한 크고 빨간 부사 사과.

 

 

 

 

아련하면서도 달콤했던 추억을 소환하기 위해 올 가을 단풍철에 드디어 주왕산을 탐방하였다.

 

탐방 구간은 상의 주차장에서 용추 폭포까지였다.

 

가을철 단풍 시즌의 주왕산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관광명소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곳이다.

 

나 자신의 추억을 보정하기 위한 이 포스팅이, 향단풍철에 주왕산에 가려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가 되기를 바란다.

 

참고로, 주왕산 방문일은 11월 1일이었음.

 

 

 

 

 

 

 주차장 ~ 상가

 

 

 

탐방 전날, 주왕산에서 약 4㎞ 거리의 리조트(청송 소노벨)에서 숙박했기 때문에 심리적·시간적으로 여유로웠던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게으름을 피운 건 아니었다.

 

아침 일찍 체크아웃을 마치고 주차장에서 등산복 차림의 수많은 사람들을 목격했다. 순간 불길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다.

 

다들 어디 가려고 이토록 이른 아침에 서둘러 길을 나서는 것일까? 혹시…?

 

부랴부랴 자동차에 짐을 싣고 주왕산 국립공원의 상의 주차장으로 향했다. 출발한 시각은 아침 아홉 시경.

 

주왕산으로 가는 길은 고즈넉했다. 청송의 고요한 아침 정경을 감상하면서, 괜한 호들갑을 떨었나 싶은 생각에 웃음이 저절로 새어나왔다.

 

 

 

 

한산하기 그지없던 도로였는데 주차장을 100여 미터 남겨 놓은 곳부터 자동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단풍철의 주왕산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조금 더 부지런히 출발했어야 했던 걸까?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섰다 갔다를 반복하면서 주차장을 먼발치에서 바라보았다. 다행스럽게도 만차(滿車) 상태는 아니었다. 차량 정체의 원인은 주차비 결제 때문이었다.

 

주차비는 선불이다. 승용차 기준 평일 4천원, 주말 및 성수기 5천원이다.

 

카드 결제만 가능하고 현금 결제 불가하므로 신용카드를 미리 준비할 것.

 

 

 

 

주왕산에서 가장 가까운 주차장은 상의 주차장이다. 

 

광활한 주차장이지만 단풍철 동안만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좁은 주차장이 아닐까?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은 9시 20분경이었는데 어림짐작으로 주차장의 80%가 찬 상태였다.  오전 10시까지는 도착해야 주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상의 주차장에 주차를 못하면 멀리 떨어진 임시 주차장에 주차한 후 걸어와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본격적인 탐방 전에 정신적·육체적으로 피곤해지게 된다.

 

 

 

 

단풍의 패왕인 주왕산의 주차장답게 주차장 이곳저곳의 단풍나무들도 하나같이 범상치 않았다. 수령(樹齡)이 오래된 듯 키와 둘레와 수세(樹勢)가 인상적이었다. 주차장에는 화장실이 있으므로 참고할 것.

 

상의 주차장에서 주왕산으로 가는 도로는 진입이 통제된다. 간혹 통제된 도로를 오가는 차들이 있던데 상가·야영장 관계자들로 보인다. 괜히 호기롭게 그들 뒤를 따라가면 낭패를 볼 수 있으니 상의 주차장에 주차하자.

 

주차장에서 주왕산으로 가는 진입로는 차량 통행이 통제되어서 한가롭지만 위에서 말한 자동차들이 가끔 오가므로 차도 대신 인도(人道)로 다니는 게 바람직하다.

 

 

 

 

진입로의 상가 지역에는 달콤한 유혹이 가득하다.

 

호떡·뻥튀기·견과류 등 주전부리 가판대와 더덕정식·버섯전골·산채비빔밥 등의 식당이 길가에 줄지어 있다.

 

아침 식사를 든든히 했는데도 불구하고 자연스레 눈길이 돌아가고 발길이 느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간식을 사 가지고 갈까 생각했지만 탐방로에서 먹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간절한 마음을 억눌렀다.

 

 

 

 

주왕산국립공원사무소 들머리에 다다르자 주왕산의 장엄한 자태가 보이기 시작했다. 흑백의 추억이 컬러로 조금씩 바뀌어가는 듯했다.  인근에 등산 스틱을 판매하는 곳이 있다.

 

상의 주차장에서 용추 폭포까지의 구간은 경사가 심하지 않고 도로 상태가 좋아서 등산 스틱이 굳이 필요하진 않지만, 경우에 따라서 등산 스틱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탐방로의 지면 보호를 위해 등산 스틱의 카바이드 팁에 보호 고무 마개를 반드시 끼울 것.

 

 

 

 

상가 구간에도 화장실이 있다. 상의 주차장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한 경우 이곳을 활용하자.

 

자연 환경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관광지에 화장실과 휴게시설을 가급적 많이 설치해야 관광객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고 생각한다.

 

편의점에서 생수 한 병 정도는 구입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상의 주차장~용추 폭포 구간은 평이하지만 왕복 기준 대략 두 시간이 소요되는 코스라는 점을 기억할 것.

 

 

 

 

한국인이 꼭 가봐야할 관광지 100곳 중 5위인 주왕산.

 

주왕산은 태백산맥의 지맥(支脈)으로서 1976년 3월 30일 우리나라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105,595㎢.

 

주왕산의 또 다른 이름으로는 석병산·대둔산·주방산 등이 있다.

 

주왕산 국립공원은 역사적·문화적·고고학적·생태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대표적 지질명소는 연화굴, 용추 협곡, 급수대 주상절리, 용연 폭포, 절골 협곡, 주방천 페퍼라이트, 노루용추계곡, 주산지 등이다. 

 

 

 

 

넓은 진입로가 반으로 줄어들면서, 길 양쪽에 있던 상가가 길 한쪽에만 형성된다. 대전사(大典寺)가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청송의 특산물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 사과!

 

부사 이외에도 다양한 품종의 사과들이 있다는 사실을 몇 년 전에서야 알게 되었다. 😱

 

홍로, 홍옥, 양광, 감홍, 엔비, 엔부, 시나노 골드, 시나노 스위트 등등….

 

사과=부사라고 생각했던 내게는 일종의 문화 충격이었다. 이후, 가을철마다 사과의 다양한 품종을 하나씩 음미해 보는 게 취미(?)가 생겼다.

 

이날 상가에서 판매하는 주력 품종은 붉은 부사와 노란 시나노 골드였다. 시나노 골드는 황금 사과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는 듯했다.

 

가게마다 시식용 사과 조각을 내어 두었지만 그걸 먹으면 왠지 사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식욕을 참았다.

 

사과 가격은 작년에 비해 꽤 비싼 편이었다. 예전에는 싼 값에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대표적 과일 중 하나가 사과였는데….

 

 

 

 

청송의 특산물인 사과로 만든 사과 막걸리도 있었다.

 

무슨 재료로 색을 냈는지는 몰라도 막걸리의 노란색이 곱디고왔다. 오렌지 주스라고 해도 믿을 듯.

 

음주 산행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므로 시음조차 생각하지 않았다. 산행을 마친 후 가볍게 한 컵 정도는 괜찮을 듯싶다.

 

 

 

 

대전사를 앞둔 곳에도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 앞에는 넓은 공터가 있었는데 주변 식당의 손님들이 주차하는 곳인 듯하다. 

 

 

 

 

 

 

 대전사(大典寺)

 

 

 

 

 

어느 순간 상가는 사라지고 황토로 만든 담이 나온다. 대전사(大典寺)에 도착한 것이다.

 

담 안쪽에 노란색·주황색·붉은색으로 변모한 단풍잎들이 탐방객들의 찬사를 자아냈다. 황토로 만든 담은 저멀리 있는 기암괴석을 깊숙이 찌르는 것처럼 보였다.

 

대전사는 주차장에서 주왕산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서 용추 계곡이나 주봉으로 가려면 반드시 지나가야 한다.

 

오가는 탐방객이 너무 많아서 사찰인지 광장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였다.

 

스님들의 수행에 지장이 있을 텐데도 사찰 경내를 개방한 대전사의 배려가 참으로 깊다고 생각했다.

 

사찰 입구에는 관광안내소가 있는데 여기서 주왕산 관광안내도를 받을 수 있다.

 

탐방로에 안내판이 잘 구비되어 있어서 관광안내도가 굳이 필요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종이 한 장의 무게이니 하나 챙기는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이토록 장엄한 주산(主山)을 가진 사찰이라니!

 

대전사는 신라 문무왕(文武王) 12년에 의상대사(義湘大師)가 건립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경북 영주의 부석사(浮石寺)를 건립한 그 의상대사가 맞다.

 

대전사라는 명칭은 주왕(周王) 설화에 나오는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大典道君)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해진다.

 

왕의 명으로 큰 스님이 지었으므로 본디 규모가 큰 사찰이었지만 수 차례의 화재로 건물들이 많이 소실되었다.

 

지금은 보광전을 중심으로 관음전·명부전·응진전·산령각·요사채 등이 있으며 부속암자로 백련암·주왕암이 있다.

 

보광전은 임진왜란 때에 불탔던 것을 조선 현종(顯宗) 대에 중창하였으며, 1995년 이후 명부전·산령각·탐진당 등을 신축하였다.

 

 

 

 

등산로를 묻는 사람이 많아서일까. 등산 가는 길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표지판 속 모자를 쓴 남자아이의 표정이 해맑다. 표지판은 주봉마루와 용추 폭포를 가리킨다. 

 

등산로 방향에는 돌탑이 있다. 자신의 소원을 소원목(木)에 그린 후 소원탑에 올리라는 안내문이 있다. 소원목은 대전사 법당 및 종무소에서 5천원에 구입할 수 있다.

 

 

 

 

 

대전사 경내를 벗어나면 장군봉 가는 길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150미터 떨어진 곳에 기암 화장실이 있다는 표지판을 동자승이 들고 있다. 회색빛 승복에 검은 고무신이 동자승의 귀여움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대전사 ~ 자하교

 

 

 

 

 

입산객 자동 계수기를 통과하면 용추 폭포로의 본격적인 탐방이 시작된다. 상의 주차장에서 이곳까지 오는 데 대략 20분이 걸렸다. 상의 주차장에서 주차에 실패하면 임시 주차장에서 이곳까지 걸어오는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단풍철 주왕산은 고생하지 않으려면 오전 10시 이전에는 주차장에 도착할 것!

 

 

 

 

 

최근 맨발로 땅 걷기 일명 어싱(earthing)이 전국적으로 대유행이다. 이러한 시류는 주왕산 국립공원도 예외는 아니었나 보다. 주왕산 맨발로 걷기 좋은 길 시작점이라는 스탠딩 배너가 있다. 맞은편에는 신발장과 세족장 안내판이 있다.

 

주왕산국립공원은 대전사에서 자하교까지의 1.3km 구간을 맨발로 걷기 좋은 길로 지정했다. 올해 5월 17일에는 주왕산국립공원사무소가 주관하여 대전사에서 자하교까지 1.3㎞ 구간을 맨발로 걷는 체험행사가 열렸다고 한다.


 

 

주왕산 일대의 대형 안내판이 있다. 지도의 현위치를 보고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았음을 깨달았다.

 

용추 폭포로 향하는 길은 그리 붐비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적이 드문 건 아니었다. 두세 명 또는 서너 명 단위로 무리 지어 용추 폭포로 향했다.

 

참고로 이날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살짝 쌀쌀한 듯하여 가벼운 패딩을 입었는데 탐방 내내 더워서 상당히 고생했다. 겉옷을 고를 때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왼쪽은 기암교, 오른쪽은 주봉(主峯)마루길로 가는 갈림길이다. 초행자라면 헷갈릴 수 있는 곳이다.

 

용추 폭포는 기암교 쪽으로 가야 한다. 탐방객이 많은 성수기에는 그들의 뒤를 따라가면 되지만 탐방객이 드문 비수기에는 갈피를 잡지 못할 수도 있겠다. 용추 폭포 방면이라는 표지판 하나가 아쉬웠다.

 

 

 

 

기암 화장실. 콘크리트로 지어졌는데 최근에 지어진 듯한데 주변 단풍과 자못 어울리는 화장실이어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

 

이곳부터 용추 폭포까지는 화장실이 없다.

 

 

 

 

탐방로 옆을 흐르는 개천은 주방천(周房川)이다. 매년 봄 주왕산 수달래 축제 중 주방천에서 수달래꽃잎 띄우기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내년 수달래 축제 일정이 정해지면 다시 와볼까 생각 중이다. 기기묘묘한 암반을 흐르는 물 위를 둥둥 떠가는 진분홍색 꽃잎이라니…. 낭만적이지 않은가? 

 

거대한 기암괴석이 둘러싼 계곡과 그 계곡을 무던히 흘러내리는 주방천. 단풍철의 끝자락에 다다른 11월 첫날의 황량한 숲과 어우러져서 신비로운 정경을 연출했다. 탐방로가 마치 선계(仙界)로 들어가는 비밀의 통로처럼 느껴졌다.

 

 

 

 

아들바위.

 

아들바위를 등지고 다리 가랑이 사이로 던진 돌이 아들바위 위에 놓이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안내판의 그림에 의하면 왼손으로 돌을 가랑이 사이로 던지라고 되어 있다.

 

펜스에 기대어 바위를 살펴보니 무수히 많은 돌들이 아들바위 위에 올려져 있었다. 도대체 몇 명의 아들이 태어났던 것일까….

 

인구 감소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요즘, 아들바위가 하나의 해결책이 되지 않을까?

 

 

 

 

탐방로 중간중간에는 이전·다음 목적지의 명칭과 그곳까지의 거리 및 현 위치의 명칭이 적힌 표지판이 있다.

 

대전사에서 받은 관광안내도가 없어도 탐방을 순조롭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다만 표지판의 디자인이 다소 아쉬웠다. 흰색·청색 조합의 시인성만큼은 인정하겠지만 주왕산과 영 어울리지 않는다.

 

표지판의 기본 색상을 단풍 색상으로 하고, 서체도 고풍스럽거나 아니면 아예 현대적이면서도 감각적인 것으로 바꾸면 좋을 것 같다.

 

 

 

 

주방천 건너편의 괴이한 형태의 나무. 땅속에서 뻗어나온 해골의 손뼈처럼 보인다. 으스스하군.

 

 

 

 

위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봄이 되면 주방천 일대에 수달래꽃이 만발한다.

 

산철쭉이라고도 불리는 수달래는 진한 분홍색의 꽃으로서 꽃잎의 검붉은 반점이 특징이다.

 

네 가지 종류의 진달래과 나무에 대한 설명이 안내판에 적혀 있지만 직접 꽃을 보면 분간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색깔이 흰 흰참꽃나무를 제외하면 진달래·철쭉·수달래를 구별하는 건 아리송할 뿐이다.

 

 

 

 

수달래에는 주왕(周王)과 얽힌 슬픈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주왕은 신라 마일성 장군의 추격을 피해 주왕굴에 숨어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굴 입구에서 떨어지는 물로 세수를 하던 주왕은 마일성 장군의 화살에 죽고 말았다. 이때 주왕이 흘린 피가 계곡을 따라 주왕계곡으로 스며들어 수달래로 피어났다고 한다.

 

수달래는 수단화라고도 부른다.

 

물이 붉게 물들어 피어난 꽃이라고 하여 수단화(水丹花)라 쓰기도 하고, 주왕의 목숨이 끊어지고 난 뒤 피어난 꽃이라고 하여 수단화(壽斷花)라 쓰기도 한다.

 

주왕산 국립공원 일대에 자신의 발자취를 남긴 주왕은 과연 누구일까? 역사적 근거는 있는 인물일까?

 

 

 

 

탐방로에는 주왕산의 지질학적 특징을 상세히 묘사한 안내판이 많다. 

 

무심히 지나치는 탐방객이 대부분이겠지만, 주왕산의 형성과정과 지질학적 특성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가뭄 속 단비와도 같다. 

 

 

 

 

탐방로보다 낮은 지대에 조성된 휴식 공간은 자하숲다. 세족장이 마련되어 있다. 높은 계단은 아니지만 탐방로에서 벗어나 내려가고픈 특별한 매력은 보이지 않았다. 중년 부부 한 쌍을 제외하면 자하숲은 텅 비어 있었다.

 

 

 

 

주왕산성터. 당(唐)과의 전쟁에서 패한 주왕이 주왕산에 자리잡은 대전사 동편 주왕암 입구에서 나한봉에 걸쳐 쌓은 돌담으로서 길이가 약 12㎞에 달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주왕은 누구인가?

 

주왕의 이름은 주도(周鍍). 진나라의 복야상서 주의의 9대손이다.

 

주도는 5세 때 글을 깨쳤고 11세 때에는 육도삼략(六韜三略)을 통달하였다. 그는 몹시 영민하여 천문과 지리를 읽는 데에도 해박하였다.

 

주도는 포부가 남달라서 "황하의 물을 들이마시고 태산을 갈아 뒤엎겠다"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

 

진나라의 후손 중에 큰 인물이 없음을 한탄한 주도는 후주천왕(後周天王)을 자처하며 당(唐)의 수도 장안으로 쳐들어갔으나 당의 명장 곽자의(郭子儀)에게 패배하였다.

 

당군에게 쫓긴 주도는, 높고 험준하여 가히 몸을 숨기고 군사를 길러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는 석병산(주왕산의 옛 이름)으로 숨어 들었다.

 

당(唐)은 신라에 주도의 토벌을 요청하였다. 신라는 석병산 일대에 수상한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마일성 장군에게 군사를 주어 주도를 찾게 하였다.

 

주왕은 기암봉에 이엉을 씌워 노적가리처럼 보이게 하여 군량미가 많은 것처럼 위장하였다. 마 장군은 주왕에게 군사와 곡식이 많다고 생각하여 감히 공격하지 못하였다. 주왕은 신라군의 공격을 막기 위해 주왕산성을 쌓았다.

 

양군의 대치가 계속되던 어느 날, 주왕의 속임수를 파악한 마 장군은 공격에 나섰고 결국 주왕굴 입구에서 떨어지는 물로 세수를 하던 주왕을 향해 화살을 쏘아 사살하였다.

 

 

 

 

용추 폭포와 주왕굴의 갈림길이다. 주왕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주왕굴에 가보고 싶었지만 탐방 시간이 한정되어 있었기에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오래전 주왕산에 왔을 때에 주왕굴에 갔었던 것 같은 희미한 기억이…. 용추 폭포로 계속 나아갔다.

 

 

 

 

 

 

 자하교 ~ 학소대

 

 

 

 

 

용추 폭포가 가까워질수록 주왕산의 비경(祕境)은 그 위용을 서서히 더해갔다.

 

주왕산의 단풍은 맑고 빨간 애기단풍이 아니라 다양한 활엽수들로 이루어져서 단풍의 스펙트럼이 단조롭지 않고 폭넓다.

 

이러한 다채로운 색의 향연이 주왕산을 단풍철의 패왕(霸王)으로 등극시킨 일등 공신이라고 생각한다.

 

 

 

 

연화굴 갈림길. 연화굴주왕의 딸 백련공주가 성불한 곳이라는 전설이 서린 곳이다. 연화굴로 가려면 오르막길을 수백 미터 올라가야 한다. 

 

 

 

 

관측 표준목주왕산의 단풍 관측을 위해 계절관측 표준목으로 지정된 나무이다. 이 나무의 단풍 상태가 청송 주왕산의 단풍 상태를 대표하는 것이다. 

 

이 나무 잎사귀의 60%에 단풍이 들면 주왕산의 단풍율이 60%라고 발표되는 것이고, 이 나무 잎사귀의 80%에 단풍이 들면 주왕산의 단풍율이 80%라고 발표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대단한 나무! 줄기가 엄청 굵은 것도 아니고 주변 나무에 비해 특별한 점이 있는 것도 아닌데 선정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급수대 주상절리(汲水臺 柱狀節理)주왕산 국립공원의 수많은 명소 중에서도 손꼽히는 곳 중 하나이다.

 

급수대 주상절리는 화산재가 식으면서 만들어진 지형이다. 주왕산의 수많은 응회암 절벽 중에서도 주상절리가 가장 선명히 드러나는 곳이다. 응회암은 화산이 폭발할 때 뿜어져 나온 화산재가 굳어져 만들어진 암석을 뜻한다. 

 

신라 귀족 김주원(金周元)이 주왕산으로 피신한 후 절벽 위에 궁궐을 짓고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렸다는 전설에서 급수대라는 명칭이 유래했다.

 

 

 

 

학소교에서 용추 폭포 방향을 쳐다보니 거대한 기암괴석들이 탐방객들을 내려다 보는 듯했다. 마치 고대 신화의 거인들에게 둘러싸인 듯한 광경이었다. 학소교에 이르자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탐방객들의 숫자가 부쩍 늘었다.

 

 

 

 

학소교를 건너면 주왕산 숲속도서관이 있다. 팔각정 형태의 도서관은 미니미니해서 장식용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내부에 사람도 있고 책도 있었다. 이곳에 와서 책을 읽을 여유가 있는 탐방객이 얼마나 있을까 모르겠지만, 기암괴석과 주방천을 감상하며 독서하는 묘미도 무시하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숲속도서관의 주방천 건너편에는 시루봉이 있다. 생김새가 떡을 찌는 시루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옆에서 바라보면 사람의 옆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옛날 어느 겨울 한 도사가 이 바위 위에서 도를 닦고 있을 때 신선이 와서 불을 지펴 주었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바위이다. 

 

바위 밑에서 불을 피우면 그 연기가 바위 전체를 휘감으면서 봉우리 위로 치솟는다고 하는데, 이 내용은 안내판에서 빼야 할 듯. 😥

 

세상이 하도 뒤숭숭해서 이 내용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시루봉 아래에서 불을 피우는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들었다.

 

학소교는 학소대 아래 계곡에 위치한 다리이지만, 학소교에서는 학소대가 잘 보이지 않는다. 용추 폭포에서 돌아오는 길에 학소대를 관람하였다.

 

 

 

 

 

 

 용추 협곡 ~ 용추 폭포 ~ 주차장

 

 

 

 

 

드디어 용추 협곡으로 들어섰다. 그와 동시에 추억 보정이 이루어졌다.

 

주차장에서 용추 협곡 직전까지 왔던 옛날 기억은 희미한 편린처럼 남아 있어서 새로운 곳에 온 듯한 기분이었는데, 용추 협곡만큼은 예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때에는 탐방로의 폭이 좁아서 사람들은 서로 지나칠 때마다 몸을 움츠려야 했다. 탐방로의 바닥은 그물 형태의 금속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탐방로의 폭이 넓어져서 교행(交行)할 때의 스트레스가 줄어들었고 탐방로의 바닥은 목재로 바뀌어서 발걸음을 옮기기가 수월해졌다.

 

용추(龍湫)란 폭포수가 떨어지는 바로 밑의 깊은 웅덩이를 뜻한다. 옛사람들은 그러한 웅덩이를 용이 승천하며 만들어진 것이라고 믿었다. 우리나라에서 어지간히 높고 깊은 산이면 용추 하나 둘 정도는 기본으로 있기 마련이다. 협곡(峽谷)은 급경사의 암석이 양쪽으로 높이 서 있는 깊고 좁은 골짜기를 뜻한다. 

 

용추 협곡의 핵심 포인트는 돌개구멍과 용추 폭포이다.

 

 

 

 

용추 폭포상류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의 양이 많지 않아 지극히 소박해 보였다. 그래도 폭포와 주변 경치가 잘 어울려서 용추 폭포 관람대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탐방로는 용추 폭포 위쪽으로 계속 이어진다.

 

 

 

 

돌개구멍. 돌개구멍은 흐르는 물에 의해 떠내려가던 자갈 등이 오목한 암반에 들어가 물의 소용돌이와 함께 회전하면서 암반을 마모시켜 형성된 지형이다. 옛사람들은 이것을 승천하던 용의 꼬리에 파인 구멍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돌개구멍을 지나면 나무데크길은 자갈 길로 바뀐다. 

 

탐방로의 바닥 재질이 바뀌는 지점 근처에는 용연 폭포와 절구 폭포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있다.

 

표지판은 탐방객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주왕산의 또 다른 명소인 용연 폭포와 절구 폭포를 향해 새로운 탐방을 떠날 것인가 아니면 출발점으로 돌아갈 것인가.

 

한정된 시간 때문에 주왕굴과 연화굴에도 가지 못했는데 용연 폭포와 절구 폭포는 언감생심이었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주차장으로 복귀하기로 결정하였다.

 

용연 폭포와 절구 폭포에 가고자 한다면 등산화 착용을 추천한다. 주차장에서 용추 협곡까지의 평탄한 길과는 달리, 거칠고 돌이 많은 길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후일을 기약하고 용추 협곡을 빠져나갔다. 올 때 봤던 용추 협곡과 되돌아 갈 때의 용추 협곡은 색다르게 보였다. 

 

 

 

 

학소대(鶴巢臺)

 

청학과 백학 한 쌍이 둥지를 지어 살았다는 절벽이다. 어느 날 백학이 사냥꾼에게 사로잡히자 짝을 잃은 청학은 날마다 슬피 울면서 학소대 주위를 배회하다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학소대 꼭대기에는 학들의 보금자리 터가 남아 있다고 전해진다.

 

 

 

 

주왕산 숲속도서관과 용추 협곡을 잇는 학소교. 단풍과 주방천과 학소교가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이 펼쳐진다.

 

 

 

 

아까 지나갔던 주왕산 숲속도서관이다. 근처에 화장실이 있다. 다음 화장실은 콘크리트 신축건물인 기암 화장실이다.

 

 

 

 

주차장에 돌아와 보니 출발할 때에는 텅 비어 있었던 버스 전용 주차장에 버스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주차장에서 나가며 보니 상의 주차장으로 진입하려는 승용차와 버스가 줄지어 서 있었다. 늘어선 줄은 대략 2㎞ 정도?

 

안타까움과 야릇한 승리감을 동시에 느끼며 주왕산 국립공원을 뒤로 하였다.

 

 

 

 

🔊🔊🔊

1. 주왕의 전설이 아로새겨진 산과 계곡

2. 기암괴석과 주방천의 환상적인 조화 어울림

3. 단풍 시즌 주차난은 각오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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