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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맛집

경주 태종무열왕릉(2017.11): 영웅, 여기에 잠들다

by AOC 2017.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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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무열왕릉은 경주시 서남부의 서악동에 있다. 매표소 공사 중이라는 안내판 앞에서 두리번거렸더니 옆 컨테이너박스에서 나오신 아주머니께서 관람 여부를 물으셨다. 태종무열왕릉에서 서악리 고분군으로 가는 길을 여쭸더니 자세히 알려 주셨는데 말투나 행동이 매우 사근사근했다. 이런 분을 만나면 그 고장에 대한 호감이 급상승하는 것이다.

 

 

 

 

정문에 들어서자 우측에 국보 25호 태종무열왕릉비가 있었다. 받침돌 거북의 역동적인 모습은 삼한을 통일한 신라의 국력과 기상을 상징한다.

 

머릿돌 좌우에는 용 여섯 마리가 세 마리씩 뒤엉켜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 비석으로써 능의 주인이 태종무열왕임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삼한을 통일한 위대한 왕의 능답지 않게 태종무열왕릉은 수수했다. 사치를 멀리하고 백성을 아꼈던 태종무열왕의 품성이 투영된 듯했다.

 

 

 

 

태종무열왕릉 뒤쪽에 네 개의 고분이 있었는데 능의 주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태종무열왕릉과 네 개의 고분을 가운데에 두고 잘 닦인 산책로가 나 있었다. 고분 터 중간중간에 배롱나무들이 있었는데 수형(樹形)이 뛰어나서 개화시기에는 자못 대단할 것 같았다.

 

 

 

 

정문과 반대 지점에 쪽문이 있었다. 그 문으로 나가면 서악리 고분군에 닿을 수 있었지만 걸어가기에는 멀어서 정문으로 되돌아갔다. 산책로 울타리에 철없는 개나리 한 그루가 노란 꽃을 피워놓고 있었다.

 

 

 

 

고분군으로 오르는 계단 좌우의 배롱나무

 

 

 

 

태종무열왕은 당(唐)을 끌어들여 같은 핏줄인 한민족이 세운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희대의 어리석은 왕이고, 신라는 외세를 업고 삼한을 통일했으나 대동강 이남의 땅만을 취하여 가까이는 대동강 이북 멀리는 만주를 상실한 나쁜 국가라는 시각이 존재한다.

 

신라만 아니었더라면 우리나라가 남으로는 한반도 북으로는 만주 서로는 중국 남동부 동으로는 일본을 지배했을 거라고 씩씩거리는 사람들이 꽤 있다. 나도 어렸을 때에 그러한 시각으로 쓰여진 역사책을 읽고 신라의 삼국 통일에 분개한 나날이 많았으니까.

 

 

 

 

역사를 공부하고, 사고의 지평을 넓히며, 철이 듦에 따라, 어렸을 때의 역사관을 돌이켜 보면 부끄럽기가 그지 없다. 민족개념 정립시기라든가 삼한시대부터 오늘날까지의 한반도 주변정세는 차치하더라도 저런 류의 감정적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본다면 가장 억울할 세 민족은 몽골·그리스·이태리다.

 

 

 

 

중국·러시아·중부유럽 일대를 말발굽 아래 굴복시킨 몽골제국, 지중해 연안을 지배한 그리스, 이집트·이베리아반도·유럽·터키 일대에 대제국을 건설한 로마. 이들의 후손이 아, 원래 세계의 반이 다 원래 우리 땅인데 어쩌다보니 현재의 국토는 과거에 비해 터무니없이 줄어들었어. 다 이게 누구누구 때문이야 하고 투덜댄다면 얼마나 웃기겠는가.

 

 

 

 

태종무열왕 등극 전의 신라는 국가가 멸망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었다. 선덕여왕의 여근곡(女根谷) 설화는 선덕여왕지기삼사(善德女王知幾三事)로 유명하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이 설화는 신라가 바람 앞의 촛불 신세였음을 암시한다.

 

 

 

 

여근곡은 경북 건천에 있는데 경주를 감싸 흐르는 형산강에서 겨우 12㎞ 거리다. 서울 남산에서 양재역까지의 거리라고 하면 쉽게 와닿을 듯. 이 정도까지 백제군 수천 명이 침투했다는 건 국경수비가 와해되고 국경 자체도 대단히 축소되었음을 뜻한다.

 

 

 

 

게다가 수백 년간 백제군 주력을 격퇴해 온 대야성(경남 합천)마저 백제군의 손에 떨어져 對백제 최종방어선이 압량(押梁, 경북 경산)으로 밀려났다. 압량과 경주는 불과 43㎞ 거리다.

 

 

 

 

그러한 상황에서 탁월한 외교술·용인술·정치감각으로, 수백 년간 자국을 압박했던 고구려와 백제를 제압하고 나아가 그 당시 세계 초강대국이었던 당(唐)과의 전쟁에서의 승리 기반을 닦은 태종무열왕은 희대의 영웅이 분명하다. 고구려와 백제의 패망을 원통하게 생각할 게 아니라 두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고찰하는 게 올바른 역사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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